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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Apr 05. 2018

‘추적 60분’

청와대와 뒷거래한 양승태 사법부의 충격적 민낯



3권 분립의 한 축이자 법 정의의 보루인 사법부가 독립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며 정치권력과 흥정과 거래를 했던 민낯이 속속 드러나 충격을 안겨줬다.             





4일 방송된 KBS 2TV ‘추적 60분’에서는 ‘판사 블랙리스트’ 실체를 추적하면서 사법부의 일그러진 얼굴과 마주했다.


지난해 봄, 대법원 행정처가 일선 판사들을 사찰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사법부를 뒤흔든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사건이다. ‘빨강은 적극적인 포섭대상, 파란색은 2차적인 포섭대상, 블랙리스트는 완전 배제 대상’ 등의 내용이 담겼고 사실상 블랙리스트였다. 대법원은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조사에 나섰지만 핵심증거인 법원행정처의 컴퓨터는 조사조차 하지 않았고 행정처 직원들은 암호를 내놓지도 않았다.


결국 ‘블랙리스트’ 존재는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을 서둘러 발표했다. 성향 파악 내용은 있으나 인사상 불이익은 없었기 때문에 ‘블랙리스트’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새로 취임한 김명수 현 대법원장은 곧바로 추가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지난 1월22일 추가조사 보고서가 공개됐다.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들을 꼼꼼히 사찰한 것은 물론, 해당 판사들의 성향을 분류한 문건들을 작성해왔다고 발표했다.       


      



‘추적 60분’이 보고서를 입수, 분석한 결과 추가조사를 통해 밝혀진 것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만이 아니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 댓글 사건’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엄격한 사법적 독립성을 지켜야 할 대법원이 청와대와 예상되는 쟁점과 대책 등 구체적인 정보를 주고받은 충격적인 정황이 드러났다. 법원 내부 게시판에는 “국민을 위한 사법부가 아니라 정권을 위한 사법부로 전락했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들끓었다.


심지어 2013년 이른바 ‘통상임금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1,2심에서 노동자들이 승소한 기존의 판결을 뒤엎고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에 대해 ‘BH(청와대)가 흡족해한다’는 문서를 법원행정처가 작성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하급법원의 판결에 담당 판사에 대한 무리한 징계를 시도하려 했다는 정황도 포착됐다. 이런 현실에서 판사들은 자신에게 돌아올 수도 있는 이런저런 불이익 탓에 상급기관의 눈치를 보거나, 공정한 법리에 입각한 소신 판결에 주저하게 된다는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조사보고서를 면밀히 살펴본 결과, 법원행정처의 주 사찰 대상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강력 추진한 ‘상고법원’ 설치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판사들이었다. 일각에서는 상고법원 설치를 임기 내 역점사업으로 정한 뒤 전방위로 추진했던 양 전 대법원장이 정부의 도움이 필요해 청와대와 손을 잡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양승태 대법원은 정권의 정통성에 치명적일 수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국정원 댓글사건과 부정선거 개입 판결을 고리 삼아 ‘상고법원’ 카드를 압박용으로 활용했고, 청와대는 정권유지를 위해 ‘대법원의 관료화 심화 및 대법원장 권력 강화’라는 문제 많은 ‘상고법원’ 추진을 미끼삼아 사법부를 회유·공작했던 셈이다. 심지어 국정원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사찰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대법원은 법관을 사찰하고, 청와대는 대법원장을 사찰한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진 셈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행정부와 거리낌 없이 공모해 온 정황이 밝혀지면서 사법부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는 높아만 간다. 논란이 커지자 사법부는 자체적으로 진실을 밝히겠다며 칼을 빼든 상황이다. 아직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파일이 수백 개에 이른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조사결과에 따른 합당한 후속조치를 취하겠다고 발표했고, 현재 3차 조사 결과를 앞두고 있다.


선출된 권력이 아닌 대법원장이 3000명에 이르는 전국 판사들의 인사권을 좌지우지 하는 기형적 시스템 아래서는 대법원장이 바뀐다 해도 사법권의 정치적 행태, 독립성 훼손이 사라진다는 보장이 없다.


방송 말미에 ‘추적 60분’ 제작진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대법원장을 역임하다 지난해 9월 퇴임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자택을 찾아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결국 우편함에 서면질의서를 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앞서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때와 똑같은 양상이었다.



사진= KBS 2TV '추적 60분' 방송 캡처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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