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괴' 혜리, 조심스레 꺼내 놓은 속마음
뭇 남성들의 마음을 훔친 아이돌 걸스데이의 혜리(24)는 이제 무대를 넘어 안방극장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며 이젠 ‘연기자’라는 타이틀에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됐다. 그리고 오는 12일 개봉하는 영화 ‘물괴’(감독 허종호)로 스크린까지 도전장을 던졌다.
12일 개봉을 앞둔 '물괴'는 중종 22년, 역병을 품은 괴이한 짐승 물괴가 나타나 공포에 휩싸인 조선을 배경으로 한다. 혜리는 수색대장 윤겸(김명민), 성한(김인권), 허 선전관(최우식)과 함께 물괴의 뒤를 쫓는 윤겸의 딸 명 역을 맡았다.
개봉을 앞둔 초가을, 삼청동 한 카페에서 혜리와 마주했다. 오랜 시간 대중과 만나왔음에도 영화배우로선 처음 인사하는 자리여서 인지 그녀의 얼굴엔 기분 좋은 설렘이 느껴졌다. 입가를 떠나지 않는 미소가 “잠을 제대로 못 잤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말해주었다.
“시사회때 완성본을 처음 보는데 무척 떨렸어요. 정말 온 몸이 덜덜 떨릴 정도였어요.(웃음) 오죽하면 김명민, 김인권 선배님이 ‘많이 떨려?’라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영화도 보는 내내 다른 건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내가 잘 했나?’만 집중해서 봤어요. 큰 화면에 제 얼굴이 나오니까 신기하긴 한데, 연기만 봤을 때는 제가 참 많이 부족했던 것 같아서 아쉬워요. 지금하면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후회가 많이 남아요.”
2012년 SBS 드라마 '맛있는 인생'으로 연기활동을 시작한 혜리는 2016년 초 종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연기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 ‘딴따라’ ‘투깝스’ 등에서 자신만의 통통 튀는 매력을 가득 발산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이미 연기력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가운데, 이번 ‘물괴’는 혜리 개인에게 있어 꽤 의외의 도전이다. 영화 현장에 처음 입성하는 건 물론, 액션과 사극 연기도 처음이었다. 쉬운 길을 버리고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한 이유가 분명 있을 터였다.
“저도 제가 사극을, 또 사극 속에서 액션을 하게 될지 몰랐어요.(웃음) 저는 운명을 믿는 편인데, ‘물괴’는 정말 보는 순간 제 운명이라고 느껴졌어요. 대본을 처음 딱 읽었을 때 폭 빠져서 마치 소설 읽듯이 술술 읽었어요. 머릿속에서 모든 장면이 그려졌죠. 그 속에서 제가 활까지 쏴요. 어릴 때부터 갖고 있던 ‘여전사’ 로망을 자극하더라고요. 물론 어려워 보였어요. 그런데 그 어려움이 제 도전의식을 끌어 올린 것 같아요.”
혜리는 윤명 역이 “여타 영화들과는 달리 ‘민폐’ 여성 캐릭터가 아니라 주체적이고 강인한 여성이라 더 끌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의 설렘과 달리 막상 촬영에 들어간 후 마주한 명이는 연기하기 수월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는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본인의 방식을 공개했다.
“어느 작품이든 감정 연기가 참 어려워요. 특히 ‘물괴’에서 명이가 감정신이 제일 많지요. 김명민 선배님과 부녀 케미를 내는 것부터 어머니의 원수인 진용(박성웅)에게 폭발하는 신 등이 대표적이에요. 사실 제가 잘 공감할 수 없는 이야기라 겁이 나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저는 최대한 나 스스로와 이 캐릭터를 일치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 명이가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지, 왜 이런 감정을 내보이는지를 느끼고자 했어요. 계속 고민하다보니 어느 순간은 제가 진짜 명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요.(웃음) 그때 쾌감은 말로 하기 힘들어요.”
혜리는 걸그룹 걸스데이의 막내로 ‘Something’ ‘기대해’ ‘여자대통령’ 등 무수한 히트곡을 발표하며 큰 사랑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최근엔 활동 방향이 음악보단 연기 쪽에 무게추가 쏠리며 몇몇 팬들은 아쉽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이에 혜리는 차분히 본인의 생각을 밝혔다.
“사실 저는 무언가 계획을 하고 활동을 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때그때 제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걸 하는 편이에요. ‘물괴’도 그때 딱 제게 운명처럼 다가와서 선택을 한 거고요. 지금 개봉 기다리고 있는 ‘뎀프시롤’도 마찬가지예요. 그렇다고 음악활동을 안 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에요. 저와 저희 멤버들 모두 좋은 노래를 찾고 있는 영과정이에요. 네 명 다 각자 분야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 보니 조금 늦어지는 감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방향성을 확실히 잡기보다 그때마다 찾아오는 운명을 받아들이려 해요.”
혜리가 연기에 더 방점을 찍게 된 계기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부터다. 하지만 그 이후 덕선 캐릭터와 비교되며 꽤 많은 악플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담담히 고백했다. “애써 무딘척하지만 무딜 수 없다”는 생각을 전하며 악플에 대하는 본인의 자세도 이야기했다.
“저는 악플을 다 봐요. 요즘엔 포털사이트에 제 이름을 치면 친절하게 지금 제게 달린 댓글을 볼 수 있더라고요.
여러분이 인터넷이 있는 것처럼 저도 LTE 스마트폰을 쓰고 있어요.(웃음) 선플은 참 좋지만, 악플엔 상처를 받을 때도 많아요. 물론 그게 오기가 돼 열일의 동력이 될 때도 있지만 힘든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마음가짐을 조금 바꾸기로 했어요. 만약 악플이 3000개라면, ‘나머지 대한민국 국민 4999만7000명의 분들은 나를 좋아해 주시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해요. 이 넓은 땅에서 아파트 단지 하나 정도의 분만 절 싫어하시는 거죠.(웃음) 그렇게 생각하면서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에게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혜리는 팬들에게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서도 기대를 부탁한다는 말을 더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저는 대중을 상대하는 사람이니까, 사람에게 행복을 드려야겠다는 의무감이 있어요. 앞으로 제가 연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계속 저의 작품 때문에 많은 분들이 웃고 행복해지셨으면 좋겠어요.”
사진=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롯데엔터테인먼트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