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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Mar 15. 2017

[리뷰] 예술과 윤리 사이에 선 문제작

 '밤의 해변에서 혼자' 

                                                                                                                                                                                                                 

홍상수 감독의 열아홉 번째 장편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오늘(13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논란의 얼굴을 드러냈다. 한국 영화 최초 베를린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이라는 화려한 이력이 반짝반짝 빛났지만, 그 빛깔은 불륜스캔들로 얼룩져 찝찝함을 남긴다. 예전처럼 홍 감독만의 확고한 작가의식이 박수를 받을 수 있을지는 온전히 대중의 선택에 달렸다.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영화감독 상원(문성근)과 불륜을 저질러 일을 쉬고 있던 배우 영희(김민희)가 독일, 강릉을 여행하며 겪는 만남과 감정에 극히 집중한다.



20년이 지나도 확고히 빛나는 작가의식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20여 년 간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열광해온 팬들에겐 좋은 작품이다. 일련의 논란에도 그는 절대 위축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신만의 작가의식을 다시 발산한다.


언뜻 로드무비 같으면서도, 언뜻 시적 운율 같은 구성도 여전하다. 홍 감독의 카메라는 주인공 영희를 중심으로 1부 독일, 2부 강릉에서의 하루를 촘촘히 따라가며 관객들을 감상 속에 폭 빠뜨린다. 이 가운데 한군데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 부유하는 영희의 모습은 진정한 사랑과 삶이란 무엇인지 깊은 질문을 던진다.


꾸준히 “나 여기 살까?”라고 묻지만 머물지 못하고, 지질한 주변인들 사이에서 “다들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고 일갈하는 영희는 단순히 안락함을 바랐던 우리네 ‘사랑’에 의문을 남긴다. 안락의 인력과 이상의 척력이 동시에 작용하며 갈팡질팡하는 그녀는 가련하지만 일면 찬연하다. 걸음방향을 위해 꾸준히 자신을 탐구하려는 면모는 감정적 공감까지 환기한다. 하지만 두 갈림길 사이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누구도 정답을 내릴 수 없다. 어쩌면 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쓸쓸함은 정답을 알아내려고 시도하는 인간의 본성 탓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세계에 갇혀버린 비윤리적 예술


1996년 ‘돼지가 우물의 빠진 날’로 화려하게 데뷔한 홍상수 감독은 영화를 예술적 경지에 도달시킨 장본인이었다. 실제로 그의 영화는 시적이다. 구성은 늘 대구와 운율이 살아있고, 공간과 사운드의 여백은 관객들에게 독특한 심상을 심는다.


그러나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자전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는 홍 감독의 말에도 불구하고, 자기변명적 메시지가 강하게 느껴진다. “원해서 산게 아니라 필요해서 산거지”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답게 살고 싶어”라는 결혼과 삶에 대한 대사에서 우리는 불륜스캔들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작품의 퀄리티는 둘째로 치더라도, 관객이 과연 작품 메시지에 공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영화는 처음부터 영희만을 바라본다. 타인의 시선에서 ‘불륜’으로 낙인찍힌 사랑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하고, 기다리는 영희의 풍경은 미학적으로 훌륭하다. 사랑하면서 누구나 경험해 봤음직한 감정을 섬세한 화법으로 소묘하며 관객들의 몰입을 촉구한다. 덕분에 영화 속에서 그녀의 고민은 당위를 획득한다. 배우로서 창창한 미래를 벗어던지고 감정에 극히 침잠해 있는 모양새는 가슴을 아리게 만들고, 숭고한 로맨스로 격상한다.



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생각해보자.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며 이기적 태도로 일관하던 현실 속 그의 사랑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이 작품은 온전히 예술적 영역이 아니다. 예술의 탈을 쓴 비윤리적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이 영화를 만든 당사자인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는 현실 로맨스에서 불륜이란 상처를 입힌 가해자다. 가해자가 도리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것 자체가 자가당착에 빠진 변명이라는 의미다. 영화적 논리와 감성은 관객을 자극할지라도, 윤리적 모순이 계속 발목을 잡아 찝찝하다.


홍상수 감독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자신을 향한 불편한 대중의 시선에 대해 “너무 다른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어떤 사안에 대해서 전혀 다른 의견과 태도를 갖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예술과 윤리는 과연 떼놓고 바라볼 수 있는 영역인 것일까. 남에게 피해주는 이기심이 예술의 탈을 써 박수를 받을 수 있을까. 판단은 대중의 몫이다.



러닝타임 1시간41분. 청소년관람불가. 23일 개봉.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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