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촛불 함께한 기분" ①
'군함도'는 고통스럽고 슬픈 역사를 토대로 하지만 송중기가 기억하는 현장만큼은 정과 사랑이 넘치는 곳이었다. 송중기는 "어떤 작품보다도 여러 측면에서 존중받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우리 제작사에도 고맙고, 깔끔한 사람들과 좋은 작업을 했단 생각이 든다"고 회상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끝없는 배움의 현장이었다는 '군함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군함도'는 1945년, 일본 하시마섬(군함도)에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탈출기를 그린다. 여기에는 광복군 소속 OSS 요원 박무영(송중기)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관객 입장에선 멋있게만 보였지만 송중기 나름대로는 연기 고민이 깊었다. 특히 영화 초반이 지난 후에야 박무영이 등장하기 때문에 앞뒤 균형을 맞추려 신경을 썼다.
"박무영은 입체적이기보다 단순하고 단편적인 인물이에요. 상급자의 명령만 따르면 되는 군인이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꿔먹는지, 그 동기 부여에 대해 감독님과 많이 상의를 했어요. '측은지심'에 대해 생각했죠. 사람이 살고 죽는 현장에서 나라와 민족이 어딨겠어요. 특히 어린 소희(김수안)를 보며 마음먹게 된 것 같아요.
제 경우 초반 두 달 가까이 촬영이 없어서, 저로 인해 흐름이 끊기면 안 된단 생각을 했어요. 그 밸런스를 맞추고 싶어 촬영이 없어도 촬영장에 많이 갔죠. 다들 고생하는데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요."
군함도에 얽힌 진실은 최근에야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송중기의 경우, MBC '무한도전'으로 접했고 영화 '007 스카이폴'의 촬영지라고 해 찾아봤던 정도였다. 이번 촬영을 하면서는 군함도에 대해 공부하고, 주변 사람들과 역사에 대해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그중 송중기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 상대배우는 극중 독립인사 윤학철 역을 맡은 이경영이다. 어머니와 두 살 차이나는 까닭에, 형이 아닌 '경영 삼촌'으로 호칭 정리가 됐다. '군함도' 숙소가 바로 옆방이고 함께 촬영하는 부분이 많아 친해졌다.
"제가 '군함도'를 통해 가장 크게 얻은 것이 있다면 이경영 선배님이에요. 그 연륜에서 나오는 여유 등, 여러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어요. 삼촌 방에서 대화를 많이 했는데, 위안부 피해 동상 얘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며칠 후에 새벽에 눈이 일찍 뜨여 일본 대사관에 차를 몰고 가 봤는데, 정말 동상 앞에 학생들이 텐트를 치고 불침번을 서고 있더군요. 잘 몰랐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웠고, 뭐라도 사다주고 싶었는데 저도 연예인이라고 쉽게 용기가 안 났어요."
최근 송중기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거주하는 '나눔의 집'에 2천만원을 기부했다. 연인인 송혜교의 기부는 물론, 이경영과의 대화도 영향을 준 듯 보였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가식으로 하면 안 되잖아요. 혜교 씨와도 결혼 후에도 계속 실천하면서 살자고 말을 많이 했는데, 이번 기부로 시작하려고요."
이밖에도 송중기는 '군함도' 촬영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한다.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황정민의 끝없는 아이디어에 놀랐고, 일찍이 톱스타의 삶을 살았던 소지섭의 진심어린 조언에 감동했으며, 다양한 분야에 능통한 류승완 감독을 보며 자극을 받았다.
'군함도'는 1945년을 배경으로 하지만 일부 장면에서는 지난 연말의 촛불 집회가 떠오른다. 군함도 내 조선인들이 다투다 다함께 촛불을 들어올리는 신으로, 송중기 역시 이 장면을 '군함도'의 명장면으로 꼽았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부터 인상깊었던 장면이에요. 하나로 뭉쳐야 되는 상황에서 다양한 인간군상을 볼 수 있죠. 연극처럼 연기했고 서로 호흡도 잘 맞아서 배우들끼리도 만족했어요. 주말이라 촛불집회를 한창 할 땐데, 춘천에서 촬영하며 '기분이 묘하다', '우리도 광화문 현장에 참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눴어요."
송중기의 '군함도' 출연은 더욱 뜻깊다는 반응이 많다. 일본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건을 다뤄, 일부 한류스타들이 출연을 망설였다는 후문이 전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송중기는 관련 물음에 인상깊은 답변을 내놨다.
"그런 고민은 전혀 없었어요. 만약 없었던 일을 억지로 끼워맞추듯 만들었다면 그것 역시 옳지 못한 일이니 안 했을 거예요. 하지만 실제 역사에 조금 창작해 만든거니까 안 할 이유는 못 느꼈어요. 저희끼리도 일본에서 싫어할 수 있겠단 말은 했지만, 옳은 일이라고 판단하고 촬영했으니 겁먹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 걸 무서워 숨기는 것도 제 성격에 안 맞고요. 숨기고 한류배우 활동을 한들 의미가 있을까요? 어쨌든 전 한국 배우니까요."
사진=블러썸엔터테인먼트
에디터 오소영 oso0@sli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