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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Aug 24. 2017

'택시운전사' 장훈,

천만감독의 특별한 연출세계 셋



‘영화는 영화다’ ‘의형제’ ‘고지전’ 등 인상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온 장훈 감독이 ‘택시운전사’로 천만 클럽에 가입했다.





장훈 감독은 ‘패기’와 ‘도전정신’으로 대변되는 연출 활동을 이어왔다. 남북 분단, 6.25 전쟁,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까지 민감한 소재에도 과감히 메가폰을 들었고, 언뜻 지루할 수 있는 스토리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꾸며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이 뚝심으로 ‘택시운전사’를 천만영화로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믿고 보는 감독’으로 등극한 장훈 감독의 연출세계를 살펴봤다.

 
‣ 논란 소재, 시스템의 악에 주목하다

장훈 감독만큼 말 많은 소재를 이처럼 많이 사용한 감독이 또 있을까. 국정원 출신 남자 한규(송강호)와 남파공작원 지원(강동원)의 이야기를 그린 ‘의형제’(2010)부터 6.25 전쟁 동부전선 최전방 애록고지 이야기를 그린 ‘고지전’(2011),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카메라에 옮긴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와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의 이야기 ‘택시운전사’까지, 장 감독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가득한 소재를 극의 중심으로 활용해왔다.





그는 늘 논란을 억지로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북 분단, 6.25 전쟁, 5.18 민주화운동의 성질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본질의 비극성을 파헤친다. 충분히 액션 쾌감을 더 키울 수 있었음에도 ‘의형제’는 국가에게 버려진 남북 남자들의 의심과 화해의 과정을 통해 분단 현실이 개인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에 집중했고, ‘고지전’은 의미 없는 전쟁 가운데에서 흐릿해진 선악의 구분을 밝혔다. 결국 극 중 캐릭터들의 다툼은 관객들에게 영화적 쾌감을 주기보단 오히려 공포를 체감케 했다.

장훈은 캐릭터 자체를 ‘악(惡)’으로 꾸미기보다 시스템과 상황이 가진 ‘악’에 주목, 바스라지는 휴머니즘을 중심에 두고 우직하게 밀어붙인다. 이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물들의 표정을 가까이서 보여주는 클로즈업 연출로 명확히 드러난다. 오롯이 인물의 얼굴을 잡는 클로즈업은 관객들을 캐릭터의 감정에 동화되게 만든다. 즉, 관객들은 카메라의 안내에 따라 그 무서운 역사 한가운데로 입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비극적 역사‧현실의 본질은 명확해지고, 그 중심에 선 개인의 정체성을 또렷해진다.
  

‣ 관객을 체험 영역으로 이끄는 비주얼 완급조절

장훈 감독의 영화들이 관객의 사랑을 받는 건 명확한 메시지 때문만은 아니다. 요소요소마다 탁월한 비주얼 감각을 선보이며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의형제’의 두 주인공은 끊임없이 서로의 뒤를 쫓아 달린다. 배경은 시시각각 바뀐다. 비오는 야경 가운데 펼쳐지는 오프닝신은 누아르, 서로를 알아가는 중간 과정에선 코믹 스릴러, 비장한 후반부엔 마이너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간다. 둘의 질주는 핸드헬드 카메라로 포착된다. 미세한 떨림까지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기는 핸드헬드는 주로 ‘제이슨 본’ 시리즈 같은 첩보 액션물에 활용되는 기법이다. 하지만 ‘의형제’에서는 액션이 아니라 감정의 스펙터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증오에서 의심으로 또 우정으로, 쉽지 않은 화해에 천천히 다다르는 인물들의 미세한 인상을 담는다.

‘고지전’은 전쟁의 지난함을 도리어 심심하고도 힘겨운 화법으로 전달한다. 기존 전쟁영화들의 가슴을 뛰게하는 연출과는 방식이다. 이로써 전쟁의 참혹함이나 혼란스러움보다 무의미한 총질을 계속 해야만 하는 병사들의 심경을 전한다. 가뿐하게 고지 정상을 향하던 카메라가 시야를 돌려 안간힘을 쓰고 고지를 오르는 인물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던지, 고지전투의 고됨을 전경과 후경의 전투로 보여주는 몽타주 시퀀스는 감정 과잉을 부추기는 여타 전쟁영화들과는 명백히 구별된다.
 
 



‘택시운전사’에서도 의외의 완급조절이 이어진다. 오프닝 시퀀스부터 시종일관 가벼운 분위기로 일관하던 영화는 만섭 일행이 광주에 들어서면서부터 유별난 연출을 하나 추가한다. 바로 피터가 찍는 카메라 영상이 다큐멘터리처럼 직접적으로 보여진다. 이전까지 단순한 관찰자에 불과했던 관객들은 피터의 영상과 시선을 일치시키며 직접 체험의 영역으로 입장한다. 기존 광주 민주화운동 소재 영화들이 피해자들의 비장함을 극적으로 묘사, 관객에게 슬픔을 강요했다면 ‘택시운전사’는 조금 더 세련된 방식으로 '체험'시킨다. 과도한 엄숙함에 대한 비난을 피하면서 감정적 공감을 환기하는 재치가 돋보인다.

 
‣ 다름에서 교감으로, 남남케미의 마술사

‘의형제’ 송강호-강동원, ‘고지전’ 신하균-고수, ‘택시운전사’ 송강호-토마스 크레취만. 장훈 감독 영화의 중심엔 언제나 남남케미가 있다. 인상적인 건 모든 버디들이 자석의 양극처럼 정반대의 인물이었다가 조금씩 교감하게 된다는 점이다. 마치 논란 소재에 대해 정반합의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정답을 찾고자 하는 그의 욕심이 엿보인다.


 



사실 남자 배우를 투톱으로 내세운 영화는 전혀 새롭지 않다. 하지만 감정 묘사와 변화 과정을 섬세히 포착하는 장훈만의 방식은 유다른 감동을 전한다.

각 쌍의 캐릭터들은 언제나 한 장소에서 서로를 마주한다. 오피스텔, 전장 막사, 택시 등등 좁은 공간에 머무는 두 인물은 경계-다툼-이해-교감의 과정을 거친다. 시시각각 감정이 변화는 이 과정에서 배우들의 능력치는 최상으로 끌어올려진다. 감정이 변화하는 인물에 대한 원샷 클로즈업과 그 변화로 인한 관계의 끈끈함을 묘사하기 위한 롱쇼트 투샷을 오가며 이 모든 단계를 유려하게 담아낸다.
 
 
에디터 신동혁  ziziyazizi@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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