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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글리스트 Oct 08. 2017

한강, NYT 기고문 파장

 “미국이 전쟁 말할 때 한국 몸서리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의 거친 '말폭탄'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추석 연휴기간 소설가 한강(47)이 미국 유력지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진= 뉴욕타임스 온라인판



한강은 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에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그는 최근 전쟁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은행에서 손주들의 대학교육을 위해 예금해온 돈 보따리를 찾아오다가 절도 피해를 당한 70대 노인 사건을 거론하며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후부터 전쟁은 그 노인이 청소년기에 줄곧 겪어온 체험이었을 것이다. 평범한 중산층으로서 살아온 그가 돈을 찾기 위해 은행으로 가는 길에 어떤 느낌이 들었을지 상상이 된다"고 말문을 열었다.


한강은 자신과 같은 전후 세대에게 휴전선 너머의 북한은 일종의 초현실적인 존재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지도와 뉴스만 뒤져봐도 환상이나 신기루가 아니라고 전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며, 평양이 자동차로 2시간 거리라는 현실감을 말했다. 초현실과 현실의 중간지대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60년 동안 특이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무관심과 긴장이라는 모순적인 감정에 어쩔 수 없이 익숙해졌다고 소개했다.


외국인(언론)들은 종종 세계가 북한을 두렵게 보는 반면에 한국인들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는 점을 신기하다는 듯이 보도한다. 북한이 핵무기를 실험하고, 미국이 북한을 선제 타격할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와도 한국의 학교와 병원, 서점, 꽃집, 극장, 카페는 평상시처럼 문을 연다. 한강은 이러한 고요는 한국인들이 실제로 (상황에) 무관심하고, 전쟁의 공포를 극복해서가 아니라 수십년 동안 축적된 긴장과 공포가 우리 안에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러다가도 단조로운 대화중 잠깐씩, 반짝 내보여왔을 뿐이라고 전했다.       


      

사진= KBS뉴스 영상캡처



하지만 지난 몇달간 매일 되풀이되는 뉴스를 보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겉으론 고요하지만 정작 마음속으로 두려움이 만연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조금씩 가까운 대피시설이 어디인지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추석을 앞두고 과일박스 대신에 비상전등과 라디오, 비상약, 비스킷 등이 담긴 생존배낭을 선물했다. 기차역이나 공항에서는 전쟁 관련 뉴스가 나오는 TV 앞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표정은 굳어 있다.


한강은 “우리는 걱정된다. 휴전선 너머의 북한이 또다시 핵실험을 감행, 방사선이 누츨될 것이 두렵다. 갈수록 악화되는 말의 전쟁이 실제로 전쟁이 될 것이 두렵다. 아직 (살아남아) 맞고 싶은 날들이 있기에. 우리 옆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한반도 남쪽에 5000만명이 살고 있고, 그중 70만개의 유치원이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고 두려움을 토로한다.


그는 자신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담은 소설 ‘소년이 온다’를 준비하면서 인류가 왜 타인에게 잔인하게 피해를 끼치는지 알고 싶어 제2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내전, 보스니아 내전과 아메라칸 인디언 학살 등을 조사한 바 있다고 전했다. 이를 통해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인간이하(Subhuman)’로 여길 때 잔혹한 행위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국적과 인종, 종교,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인간 이하로 여길 때 참극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이 타인의 고통을 진정하게 받아들여야 비로소 이러한 편견들을 씻어낼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사진=창비 제공



한국전을 강대국들의 대리전으로 인식한 한강은 노근리 학살을 비롯해 미군이 한국전쟁 중에 저지른 만행을 소개했다. 피란민을 인간이하로 여겼기 때문에 벌어진 참극이라고 해석했다. 70년이 지난 지금, 자신은 매일 접하는 미국 발 뉴스들이 위험스럽게도 (전쟁 중 만행을 연상시키면서) 친숙하다고 전했다.


“미국은 몇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우리는 이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매일 2만명의 한국인들이 죽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라. 전쟁은 미국에서 나는 게 아니라 한반도에서 난다”는 등의 뉴스가 노근리 학살 당시 미군이 한국인을 인간이하로 여겼던 것을 연상시킨다는 말이다.


한강은 한국 정부가 심각한 대치 상황에서 대화를 통한 평화로운 해법만을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들(한국인들)은 한가지 밖에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주목했다. 정확한 말이라는 생각에서다. 


한국인은 실제 한가지만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은 “평화적이지 않은 해법과 승리는 공허하고 터무니없으며 불가능한 슬로건"이라는 사실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누구도 한반도에서 또다른 대리전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강은 작년 겨울의 ‘촛불혁명’ 이야기로 글을 닫았다. 한국인들은 촛불이라는 평화적인 도구로 사회가 변화하기를 바랐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우연히 생명체로 태어난 약하고 순수하되, 존엄을 갖고 있는 수십만의 사람들이라면서 누가 그들에게 평화가 아닌 다른 시나리오를 말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에디터 김혜진  agent@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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