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데 산티아고 -이라체
이라체 수도원 벽에는 약수터의 수도꼭지처럼 생긴 밸브가 있는데 이 밸브를 열면 공짜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
한국 생맥주집처럼 ‘콸콸’ 쏟아지지 않고, 감질나게 “졸졸”나온다. 그나마 뒤에서 컵을 들고 기다리는 다른 순례자들의 눈치가 보여 맛만 보게 되지만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숨을 돌릴 수 있는 명소다.
오는 길 내내 포도나무가 지천에 널려 있었지만 이렇게 물처럼 퍼 주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포도주가 벽 안쪽 저장고에 들어가 있을까?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여기서 만난 한국인 노 부부는 남편 분이 72살, 아내 되시는 분은 60대 후반이라 하시는데 나이가 무색하게 건강해 보이셨다. 길을 걸으며 몇 번 더 마주쳤었는데 항상 볼 때마다 두 분이 손을 꼭 잡고 다니시는 것이 너무 부러워 나도 나중에 흰머리가 늘어나거나, 대머리가 될 때쯤 아내를 꼬셔서 다시 와야지 하는 소망을 가져 보기도 했다. 이렇게 밥벌이의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정년퇴직을 하고 여행 삼아 오신 분들도 많았지만 젊은이들도 많이 만났다.
로그로뇨 알베르게에서 만난 고등학생과 그들의 보호자 인 젊은 선생님 한분은 특목고 학생과 교사인데 학교 프로그램에 따라 고3 수험생이 되기 전 2주에 걸쳐 유럽여행을 한다며 자기소개를 했다. 단순히 유럽 여러 나라의 박물관, 유명 관광지, 성당, 관광명소.. 이런 것만 보여주는 획일적인 여행보다는 아이들에게 뭔가 특별한 경험을 주기 위해 순례 길을 거쳐 다음 목적지인 포르투갈로 이동한다고 했다.
알베르게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처음 그들을 만났는데, 아이들 표정은 마치 내가 피레네를 넘어 론세스바예스 에 도착한 첫날처럼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역시, 물어보니 로그로뇨가 순례길 둘째 날이라 했다.
남일 같지 않아 남학생에게 “군대 가면 실컷 걷는데 뭐 하러 돈 주고 여기까지 와서 사서 고생하냐고..., 차라리 힘드니 버스 타고 기차 타고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를 가라”라고 했더니 웃는다.
로그로뇨는 시끄럽고 정신없는 곳이라 순례자들이 묵기에는 별로라는 소문이 있었다. 사실이었다.
도착한 날은 평일임에도 스페인의 축제로 공휴일이었다. 한낮인데도 뒷골목 바와 거리를 한 손에는 와인, 다른 한 손에는 다양한 타파스를 들고 웃고 떠드는 멋지게 차려입은 수많은 현지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타파스 바가 유명한 골목이라 해서 늦은 점심을 해결하려고 했는데 땀내 나고 초라한 나 같은 순례자는 낄 자리가 없었다.
알베르게도 마찬 가지였다.
전 세계에서 온 젊은 백패커들은 죄 다 이 알베르게에 묵는지 자정이 지나도록 마당에서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어제 숙소와는 완전히 달랐다. 어제는 알베르게에 들어가니 저녁 먹을 시간도 안됐는데 다들 침낭을 뒤 집어 쓰고 누워 있었다
‘벌써 자나? 침낭 뒤집어쓰고 우나?.. 너무 조용하다’
사람들의 잠을 방해할까 봐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히 짐을 풀고 한참이나 밖에 나가 저녁 먹고, 산책하고 돌아왔었다.
이 길을 사람들은 성 야고보의 무덤을 보러 가기 위한 거룩한 순례길이라 하며, 길을 걷는 사람들을 순례자라는 경건한 호칭으로 부르지만 모든 순례자들이 종교 나 영적인 목적으로 오는 것은 아니었다. 젊은 순례자들은 우리가 서울, 도쿄, 상해, 홍콩, 인도에서 마주치게 되는 백패커들과 다르지 않았다. 학교를 휴학하거나, 직장에 들어가기 전 장기간의 여행이 가능할 때 세계를 떠도는 여행자들 중 하나였다. 처음에는 궁금했다.
'아니 파리, 로마, 런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만 둘러봐도 볼 것인 천지인데 왜 이 시골마을까지 와서 저러고 다닐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순례길은 여행지로서도 최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순례자 여권만 있으면 하루 5에서 10유로 만으로 숙소가 해결되고, 시골이라 물가가 싸고, 지나는 마을마다 물과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카페와 바가 있어서 주머니가 가벼운 그들도 먹고 마시는데 큰 부담이 없었다. 한국의 가을 날씨처럼 스페인의 가을 날씨는 너무나 화창해서 한낮에는 제법 덥더라도 젊은 그들이 걷기에는 “껌”이었을 것이다
대학에 들어간 이듬해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되었다. 해외로의 빗장이 열리면서 어학연수와 관광을 목적으로 출국이 급증했고 밤새 기차 타고 국가와 국가 사이를 이동하고, 최대한 돈을 아껴가며 여행하는 유럽 배낭여행은 모든 젊은이들의 로망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규제가 풀리고 해외여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더라도 나와 같은 일반 서민층 자녀들에게 있어 자비로 그 돈을 마련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돈 도 돈이지만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고, 교과서로만 영어를 배우고 평생 외국인을 만나 본 적도 없는 인간들이 주변에 수두룩 했던 시대였다.
의사소통도 문제였고 무엇보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두려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신혼여행을 떠날 때 여권을 만들었고 그것이 첫 해외여행이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부모를 따라 어릴 때부터 해외여행을 다니고, 일찍 영어를 배우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외국 문화를 접하면서 이런 외국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것 같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디든 여행을 떠날 수 있으니 그들이 한없이 부럽기도 하다
우리 시대 20-30대 젊은이들의 삶에 대한 어두운 현실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길에서 만난 이들은 대게 학교를 휴학하거나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왔다고 하며 앞으로 살아나갈 인생에 대해 다들 고민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껏 본 노을 중 가장 환상적인 석양을 봤던 caldadilla de la cueza에서 만난 젊은이는 알베르게에 들어서면서부터 풍기는 아우라가 범상치 않았다.
얼굴빛은 건강하고 맑아 보였으나 턱밑의 수염은 그 수염의 길이로 짐작해 보건대 몇 년은 안 깎은 것 같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매일 반복되는 야근과 과중한 업무에 지친 선배들을 보고 앞으로 남은 인생 저들처럼 살 자신이 없어서 퇴사하고 오 대륙을 떠돈 지 벌써 2년 째라 했다.
쿠바를 거쳐 남미를 여행하다가 스페인으로 왔다고 하는데 여기 온 이유가 더욱 기가 막히다. PCT라고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 국경까지 장장 4300km를 도보로 여행하는 극한 코스를 걷기 전 ‘워밍업’ 삼아 왔다고 한다.
생활비는 어떻게 마련하냐고 물었더니.. 한국에 있는 부모님에게 도움을 받을 형편이 안돼 실로 팔찌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비를 마련한다고 한다.
언론 보도를 보면 요즘 신세대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 나 조부모로부터 귀여움만 받고 자라서 인내심이 없고 쓸데없이 자존감만 높아 직장에서 조금만 싫은 소리를 듣거나, 힘든 일을 시키면 퇴사한다고 비판한다.
젊은이들은 그들 나름대로 기성세대의 고리타분한 삶을 고집하거나,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사람들을 꼰대라고 부른다. 힘들게 공부하고 노력해서 돈 많이 벌고 복지혜택도 좋은 대기업에 들어가더라도 몇 년 못 다니고 퇴사하고, 공무원을 준비하거나 여행을 다니며 사진 찍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삶을 살겠다고 한다.
어떤 삶을 선택하고 걸을지 정답은 없다.
그들 각자의 삶과 가치관을 존중해 주고 우리 곁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된 것 같았다
알베르게에는 조그만 수영장이 있었는데 주인의 딸로 보이는 초등학생 또래 아이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30분 정도 놀다 물 밖으로 나오니 수영장 곁에서 내내 지켜보고 계시던 스페인 할머니가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주고, 옆에 앉아 숙제를 봐주신다.
어쩌면 우리들의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그 할머니는 태어나서 한 번도 다른 나라에 가본 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50가구도 안 되는 이 조그만 시골에서 태어나 이웃 마을 남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손자를 돌보면서 여생을 마칠지도 모른다.
살아가는 동안 어느 순간에 그녀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지 않았을까?
히피 친구는 나와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같이 떠나 실래요?” 하고 나를 꼬드겼다.
나 역시 삶의 무거운 짐 때문에 이 길을 나섰으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다음 생에 해볼게! 난 너무 많이 와버렸어.... 돌아가기에는"
그는 바쁠 것이 없으니 늦게 출발한다고 했고
나는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어제 걷지 못한 길을 빨리 따라잡고 <집>으로 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