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데 산티아고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
스페인 관광청이 발표한 2018년 자료를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방문한 순례객은 대략 17만명, 한국인이 12위를 기록 오천명 정도 다녀 갔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가까우니 스페인 현지인 들과 유럽에서 온 순례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길에서 만난 독일인은 이번 순례길이 여섯 번째라고 했다.
"really?" 내가 잘 못 들은 건가?
밤마다 침낭을 뒤집어쓰고 집으로 돌아가야 만 하는 101가지 핑곗거리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두 번째 순례길이라고 자랑하는 순례자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찍고 다시 거꾸로 걷고 있다는 정신 나간(?) 젊은이는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두 번도 아니고 여섯 번째 라니!!!
프리랜서라 일거리가 없으면 여기 와서 걷고, 걷다가 다시 돌아가서 일하고.. 이렇게 나눠서 순례길을 걷는다고 했다. 일주일 휴가 내는 것도 동료와 상사 눈치 봐야 하고 , 해마다 비행기 삯을 마련할 돈도 없고,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네 유전자상 여섯 번 씩이나 왔다는 그가 마냥 신기했다. 그 역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 먼 곳에서 여기까지 왜 왔니?”하고 놀란다.
길에서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이고 호구조사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순례자 들뿐 아니라 스페인 할매 들도 우리나라 할매들 처럼 호기심이 많은지 시골마을을 지나다 보면 그들의 시선에 뒤통수가 따가웠다.
"저 시커먼 동양인은 왜 이 먼 곳까지 와서 순례를 하는 걸까?" 느낌이 이상해 돌아보면 궁금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만약 제주도 올레길에 아프리카에서 온 외국인들이 부쩍 많아지기 시작한다면 아마 그 섬에 오래 사신 할매들도 너무 궁금해 말을 걸고 싶을 것이다. 그들에게 나는 피부색이 다른, 멀고 먼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이방인 중 한 명이었다.
길에서 무수히 똑같은 질문을 받았지만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나도 몰랐다.
기독교인이지만 어떤 종교적인 체험을 위해 길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십여 년 전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린 책이 하페 케르켈링이 쓴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였다. 그 책을 읽고 나서 시간과 여유가 생기면 언젠가는 한번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은 있었다. 그러나 책에서 본 여행지가 멋지더라도 모두 가 볼 수도, 먹방에 나온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 보인다고 전부 먹어 볼 수는 없다. 사는 게 너무 바빠 이런 책을 읽었는지도 까맣게 잊고 살았다. 2006년 서명숙 님이 이 순례길을 걷고 나서 이를 모티브로 제주도 올레길을 만들었다는 것은 걷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다 아는 전설이다. 올레길이 예상 밖의 대박을 터뜨리자 대한민국 모든 지자체가 너도나도 무슨 무슨 길을 만들기 시작해 한반도 전체가 길이다. 서울 둘레길, 강원도 해파랑길, 지리산 둘레길, 오대산 선재길.. 이렇게 좋은 길이 많은데 왜 굳이 스페인까지 가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알베르게 침대에 누워 한참을 생각했다.
'여기까지 왜 온 걸까? '
나이, 경력, 체력 모두 인생의 전환점에 와 있었다.
이제는 하산을 준비해야 될 시간이 온 것이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변화를 물색하기 위해 왔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했다가는 더 많은 질문을 받게 될 것이 뻔하고 그 질문에 모두 답하기에는 내 영어실력이 부족했다. 아무 말 대잔치가 될 것이 뻔했고 다시 못 볼 가능성이 110 퍼센트인 이방인들한테 까지 주절이 주절이 내 개인사를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궁금해하는 그들에게 " 방송과 책을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해졌고 그래서 걷고 싶어서 온 거예요"라고 둘러댔다.
대게 "왜 왔니? " 다음 질문은 “가톨릭 신자니?” 하는 질문이다.가톨릭 3대 순례지가 있는데 이 순례지를 가보는 것이 교인들에게는 일종의 로망이라 한다. 예루살렘, 로마(바티칸), 그리고 여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다.
로마 가톨릭을 빼고 중세 유럽의 역사를 설명할 수 없듯이 스페인 현지인의 76퍼센트는 천주교 신자라 하지만 매주 예배를 드리는 신도는 점점 줄어든다고 한다. 순례길 내내 지나는 마을마다 텅 빈 채 쇠락해 가는 14-15세기에 지은 낡은 성당을 수없이 많이 봤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성당은 있었다.
작은 마을인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에도 12세기에 지었다는 성당이 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성당 앞 사설 알베르게는 공립 알베르게에 비해 가격이 비쌌지만 침대가 깨끗했고, 샤워실이나 1층 주방도 현대식이었다. 절뚝거리며 걷다가 오늘은 일찍 숙소를 정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순례길 내내 그렇게 배낭이 무거운데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다닌 것은 존 브리얼리가 지은 <산티아고 가이드북>이었다. 저자가 추천 해준 일정대로 33일 만에 산티아고에 도착하려면 하루 25 – 30 km 나눠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내 걷는 속도는 그 반도 안됐다. 마음은 급했지만 그렇다고 달려갈 수도 없었다
물집이 좀 나으면 빨리 걷거나, 최악의 경우 귀국해야 할 날짜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중간에 포기하고 다음 생을 기약하자고 마음을 편하게 먹기 시작했다.
하루에 얼마를 걸었는지?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배고프고, 지치기 시작하면 길에서 만나는 가장 가까운 마을에 숙소를 잡았다. 가이드북의 일정대로 라면 여기 몬하르딘은 잠깐 쉬었다 가는 곳이지 하루 묵는 장소가 아니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 바늘과 실로 물집 제거 수술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노란색 빨간색 실을 발가락에 매단 채 알베르게 앞에 앉아 일광욕을 했다. 이렇게 하면 부풀어 오른 살이 떨어지고 , 새살이 금방 돋아 날 것 같았다. 알베르게 바로 앞이 St Andres 성당이다. 이 정도 오래된 건물이면 한국에서 보물 00 호 거나 중요 문화재로 지정돼서 사람의 입출입이 제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서쪽으로 기울어지는 햇볕을 쫓아 성당 마당 잔디밭에 들어가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말고는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성당문은 잠궜겠지? 하고 살짝 문을 열어보니.. 열린다. 처음에는 아무도 없는 이런 성당에 들어가게 되면 마치 오래된 보물을 발견하거나 먼지 가득한 유적지에 들어가는 인디애나 존스가 된 기분이었다.
종교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중세시대 교황과 사제, 봉건 영주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해 민중을 현혹하고 착취했다고 비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가만히 시계를 과거로 되돌려 본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파올로 코엘료가 그의 책에서 소개하면서 길 위에 화살표를 만든 것도 아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전 세계에서 순례자들을 불러 모은 것도 아니다. 길의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면 놀랍게도 1000년이나 된다. 중세에는 프랑스 파리, 심지어 독일에서 출발해 스페인의 서쪽 끝까지 신앙심 하나로, 오직 도보로 순례를 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사제들의 현혹과 면죄부를 받아 천국에 가야 한다는 그들의 꾐에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단정해서 말할 수 있을까? 지금처럼 더운물이 나오는 숙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음식과 물을 얻을 수 있는 식당과 카페가 마을마다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피레네 산맥을 넘을 튼튼한 등산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비와 바람을 막아줄 질 좋은 옷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ATM에서 수시로 돈을 인출할 수도 없었을 테니 강도를 만날 위험을 무릅쓰고 처음부터 챙겨 가던가 중간에 일을 하며 먹고 마시고 잠잘 곳을 마련해야 했을 것이다. 가벼운 물집 때문에 생긴 감염이나 감기 때문에 산티아고에 도착하지 못하고 길에서 삶을 마쳤을 수도 있고, 늑대 같은 산짐승에게 생명을 잃는 순례자들도 많았을 것이다. 수많은 순례자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길을 걸었다고 생각하니 겨우 일주일 걷고 포기하려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절뚝거리면서 성당 안에 들어가 기도했다.
"비록 그들처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소망 때문에 길을 나선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그 옛날 순례자들처럼 길에서 하나님이 저와 동행 하심을 느끼게 해 달라고... "
기도했다.
생장에서 같은 날 출발했던 순례자들은 절뚝거리는 나를 다들 앞서 달려갔는지 이제 길에서 보이지도 않았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나는 걷고 있는 데 다른 사람들은 꿈을 좇아 다들 달려가는 것 같았다. 자신들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3-4년마다 더 좋은 직장을 찾아 이직하고, 퇴근 후 대학원과 학원을 다니면서 영어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하려고 노력했다. 주말에는 재테크한다고 부동산 경매시장과 주식 시장을 기웃거렸다.
나 역시 그들처럼 사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들처럼 하지도 못하면서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나 자신이 뒤쳐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초조함만 키웠었다. 이 길을 혼자 걸으며 생각해 봤다.
사람마다 성격, 가치관, 환경 등이 다 틀린데 왜 모두들 “잘 살아보세”를 목표로 , "부자 되세요~ " 이런 인사만 서로 건네면서 살고 있지?
"남들처럼 부지런히 걸어서 33일 만에 산티아고에 도착하던 절뚝거리면서 60일 만에 도착하던 그게 뭐 그리 중요하지? ".
뛰는 사람도 있고, 걷는 사람도 있다.
빨리 걷다가 물집이나 감기에 걸려 며칠 뒤쳐질 수도 있고, 느리게 걷다가 다급해져 이틀 거리를 하루 만에 도착할 수도 있다. 얼마나 빨리 걷는지, 다른 사람들을 앞질러 먼저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마치 한여름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를 맨발로 걷는 것처럼 쓰라리고 아파도 포기하지 말고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는 것이 중요했다.
다른 사람들 보폭에 내 걸음을 맞출 필요는 없었다
"한국에도 좋은 길 많은데 왜 거기까지 갔었니?"
집으로 돌아온 후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역시 침대 위에서 뒹굴면서 한참을 생각했다.
왜 거기까지 갔을까?
역시 주절이 주절이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나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방송과 책을 통해 산티아고 순례길이 유명해졌고 그래서 걷고 싶어서 온 것이라고 둘러댔던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경치는 멋있지만 스토리가 없잖아~!"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는 기독교 영토 회복 전쟁, 800년 동안의 레콩키스타에서 인간이 만든 승리의 아이콘이자 전쟁의 상징이 된다.... 와글와글 대는 인간의 목소리 대신 예수님 말씀이 생각났다.
"믿음, 소망, 사랑"
여기에 전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