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팬티

카미노 데 산티아고 - 수비리

by 알토

해마다 송년회가 되면 지인들과 부부동반 모임을 할 때가 있다. 보통 그런 자리에서 서로의 덕담만 나누면 좋으련만 아내는 내가 집에서 밥은커녕, 설거지 한번, 세탁기 한번 안 돌린다고 성토한다. 그런 아내의 간증을 들으면 남자들은 부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어떻게 그런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 수 있어요? 숨겨진 비결이 뭐예요?” 하면서 알려 달라고 한다. 동석한 여자들은 "설마? 농담이지?” 하고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때 아내는 비분강개한다. “왜 내 말을 안 믿어!”. 밖에서 보는 내 이미지와 집안에서 하는 행동이 너무 다르다고 피 대신 침을 토하면서 열변한다.

그렇다! 나는 맞벌이를 하면서도 집에서 가사노동을 공유하지 않았던 나쁜 남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너무 피곤해서 기억을 못 하는 건가?’

내가 코를 너무 골아대서 화가 난 옆 사람이 밤새도록 나를 깔고 앉아 구타한 느낌이었다. 한국에서부터 걱정된 허리 통증이 재발할까 봐 10여 분간 스트레칭을 하고 출발하는데 성당문을 여시는 신부님께서 “올라” “부엔 카미노”하면서 인사하신다. 등산스틱을 챙기고, 빼놓은 물건은 없는지 둘러봤더니 길에 또 아무도 없다. 다들 해뜨기 전부터 일어나 부스럭거리면서 짐을 싸더니 벌써 저만치 앞서 간 것이다.

길에서 제일 힘들다는 피레네 산맥도 넘었는데 오늘은 좀 익숙해져서 걸을만하겠지.. 이것이 그저 희망 사항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걷는 것, 특히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는 것은 다시 태어나 특전사나 해병대에 입대하지 않은 이상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무거운 배낭이 시지프스 신화에 나오는 바위처럼 내 어깨를 눌러댔다. 30분 걷고 10분 쉬고, 다시 20분 걷고 물 마시고, 10 분 걷고 땀 닦고, 다시 10분 걷고 신발에 들어간 흙 털고. 이건 뭐 유람하는 것도 아니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유유자적 걷다 보니 다음 목적지인 수비리에 도착하니 해가 지려고 한다.

또 울고 싶어 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귀신같은 마눌에게서 영상통화가 온다. "응, 나 다음 마을에 도착은 했는데 아직 숙소를 못 잡아서… 좀 있다 내가 전화할게"

마을에 들어서니 가이드북에서 소개한 알베르게가 나타났다. 빈 침대가 있는지 물었더니 다 찼다고 냉정하게 돌아선다. 열린 문틈으로 보니 어제 숙소에서 만났던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다들 침대에 누워 처량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여태 길에서 뭐 하다 이제 나타났니?' 모두들 궁금해하는 표정이다. 근처에 다른 숙소 없냐고 물으니 아마 오늘 다 찼을 거라고 한다.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고 현기증이 난다. 혹시 모르니 앞 Casa나 길가 Hostal에 가 보란다. Casa는 역시 방이 없고 Hostal에는 방이 남아 있는데 70 유로란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8유로 주고 잤는데. 열 배나 돈을 주고 잘 수는 없었다. 좀 더 뒤져보고, 정 안되면 ATM에서 돈을 뽑아 70유로 주고 잘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하고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큰 길가로 나오니 새로 지은듯한 알베르게가 보인다.

“빈방 있나요?” 슈렉에 나오는 고양이처럼 간절한 눈빛으로 Host 아줌마에게 물었더니 응답이 왔다. 있단다!.

알베르게 내부 이 집은 시설이 아주 좋은 편이다

침대를 배정받고, 샤워를 하니 아까 육체를 떠났던 넋이 다시 돌아온다. 가장 급한 일은 어제 못한 빨래를 해야 했다. 속옷은 매일 빨아 입으면 된다기에 몇 개 챙겨 오지도 않았다. 오늘도 빨래를 못하면 모레 입을 옷이 없었다. 속옷도 속옷이지만 하루 종일 땀을 많이 흘려, 매일 세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집에서 내 손으로 빨래를 안 하지만 땀냄새나는 옷을 계속 입고 다닐 수는 없었다.


마치 음악 한곡을 무한반복으로 틀어놓은 것처럼 숙소에 도착해서 하는 일은 항상 순서가 정해져 있었다. 침대 배정받고, 샤워하고, 빨래하고, 저녁 먹고, 빨래 다시 걷고, 잠자기. 하루 끝.

그리고 다시 걷기, 걷기, 걷기, 걷기... 숙소 갈 때까지 또 걷기.

한낮에 숙소에 일찍 도착해 빨래를 해서 널어놓으면 강렬한 햇살 때문에 금방 말랐다. 그러나 오늘 같이 늦게 도착한 날이면 밤새도록 널어 놔둬 빨래가 마르지 않았다. 돈을 내고 수건, 속옷, 티셔츠 한 장을 건조기에 돌리기도 아까웠고 건조기를 가진 알베르게도 많지 않았다. 밤새 널어놓으면 마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슬 때문에 흠뻑 더 젖어 있었다. 그 후 해 질 때쯤 항상 걷어 두었다가 한낮에 배낭에 빨래를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면서 말린 적도 많았다.

속옷과 셔츠, 수건에 비누칠을 하고 손으로 비벼 빠는데 갑자기 눈물이 난다.

눈물의 현장

‘아 이게 뭐 하는 짓이지? 이 멀리 와서 팬티나 빨고 있으니... 집에 너무 가고 싶다.’

마치 군대 훈련소에 입소해서 첫날밤에 느꼈던 느낌이 싱크로 된다. 어제는 그저 죽기 전에 산맥을 넘어야 한다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고, 숙소에 도착해서는 밥 먹고 바로 쓰러져 잤으니 이런 멜랑콜리한 감상에 빠질 시간도 없었다. 젖은 팬티를 뒷마당 빨랫줄에 너는데 그날따라 달은 어찌 그리도 밝던지..


달 빛 깃든 밤에

알베르게 뒤뜰에 서서

땀에 젖은 팬티 한 장을 빨아 넌다

아 만추의 달은 어찌 그리도 밝으냐

시가 절로 된다.

팬티 한 장이 많은 깨우침을 주는 밤이었다.


외식도 많고, 청소랑 빨래를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나마 그것도 청소기와 세탁기가 해주고.. 얼마 전에 건조기도 샀으니 기계가 다 알아서 해주는 데 뭐 힘들어? 우리 엄마는 얼음 깨고 내 똥 기저귀 빨고, 시집오자마자 가마솥으로 아빠 형제 7남매 밥해서 삼시세끼 먹였다고 하는데..라고 감히 입 밖으로 말한 적은 없다.

이렇게 말했다간 순례길에서 돌아왔을 때 마누라가 나 몰래 이사를 했을 것이고, 이런 흉악한 대화가 SNS를 통해 퍼지는 날엔 수많은 여성들의 테러를 피해 여기 스페인 산골마을에 뼈를 묻어야 했을 것이다.

딸을 키우고 있는 한 아이의 아빠임에도 한국뿐 아니라 다른 선진국에서도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편견과 차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힐러리 여사가 남자였었다면 아마 미국 대통령이 되었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며, 미국에서도 흑인 남성이 백인 여성보다 먼저 투표권을 얻었다고 하니 아무리 여성의 지위가 높아졌다 하더라도 유리천장이 존재하는 것은 맞다.


얼마 전 아내와 딸과 함께 <82년생 김지영>을 관람했다. 조조상영이라 극장은 한가했고 내 옆 좌석에는 모자를 푹 눌러쓴 50대쯤으로 보이는 여자분이 오른쪽에는 팝콘, 왼쪽에는 콜라를 두고 관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극 중, 늦은 귀갓길에 뒤를 쫓아오는 남학생 때문에 공포에 질려 우는 고등학생 김지영을 향해 “왜 이렇게 짧은 치마 입고 늦게 다니고 그래” 하며 그녀의 아빠는 엉뚱한 질책을 한다. 옆의 여성분이 팝콘을 먹으려다 주먹을 움켜쥐면서 말한다. "어 저걸 아버지라고, 앞에 있었으면 확 패 버리고 싶네!" 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내 좌석 왼쪽 팔걸이를 차지한 그녀의 팝콘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최대한 어깨를 웅크리고 아내에게 몸을 기댄 채 영화를 봤다. 극장에서 영화가 아니라 옆 관객에게 공포를 느꼈던 적은 처음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동일하게 노동으로 돈을 벌면서 퇴근하고 돌아와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세탁기에 넣고, 다시 건조기에서 꺼내서 가지런히 개는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저 한 달에 한번 하는 화장실 청소, 재활용 분리수거, 음식물쓰레기 버리기로 우리 이제 비긴 거야 하고 빤질댔는데 신혼 때 어머니와 살면서 집안일을 안 하는 못된 습관이 몸에 배서 그런 것 같다.

길에서 느낀 바가 많아 돌아가게 되면 열심히 집안일을 하려고 했다. 어차피 이제 백수인데 "내 기필코 살림의 제왕이 되리라!" 하고 결심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마음만 먹는다고 다 제왕이 되는 건 아니었다. 고기를 굽거나, 찌개를 끓이거나, 계란말이를 하거나, 하다못해 라면 하나 끓여도 항상 주방은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초토화되었다. 설거지를 내가 하면 항상 냄비에 기름띠를 남기던, 숟가락에 고춧가루가 남아 아내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결국 이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 나는 주방 출입을 금지당했다. 그럼 빨래나 개볼까? 이것도 몇 번 시도했으나 나의 빨래 개는 방법이 맘에 안 든단다.

“아니 어차피 수건이야 한번 쓰고 빨래통으로 들어가는데 이걸 뭐 하러 개? 그냥 건조기에서 나오자마자 바구니에 넣어 두고 하나씩 꺼내 쓰면 되지? “ 딸아이는 이런 나의 합리적인 결정에 동의했으나..… 앞으로 빨래에도 손대지 말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여전히 연말 모임에서 내게 비법을 묻는다.

나는 답한다. “독수리의 눈과 귀신같은 식스센스를 가진 아내와 살면 그렇게 됩니다”


차 타고 가고 싶어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