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데 산티아고 - 팜플로나

때로는 작은 친절을 베푸세요

by 알토

순례길을 걷게 되면 조용한 시골 마을만 지나는 게 아니라 제법 큰 4개의 도시를 만난다.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 그리고 마지막 목적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다

수비리를 지나 첫 번째 도시 팜플로나에 들어왔다. 해마다 7월이면 열리는 광란의 소떼 축제로 유명하고 인구가 20만 명 정도 된다 하니 우리나라 강릉 정도의 도시다. 역시 또 이미 해는 졌다. 고백하자면 팜플로나에 들어왔다고 착각했었다. 산길을 넘어 조그만 다리를 건너니 제법 큰 동네가 보인다. “아 오늘은 생각보다 빨리 왔네, 이제 걷는 것도 점점 익숙해지는 건가?” 하고 길가 카페에 들러 스페인 와서 처음으로 그 유명하다는 하몽 샌드위치와 맥주 한잔을 시켜두고 지도를 검색했다.

맥주와 하몽 샌드위치.

믿기지 않았다. 오늘 목적지인 팜플로나 까지는 아직도 6km나 더 남아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며 팜플로나 시의 외곽이겠지.. 생각했는데 그곳은 비야바라는 마을이었다. 게다가 시내 중심까지 가려면 10km 정도 더 걸어야 한다고 나왔다. 아니 이런 느려 터진 걸음으로 10km를 더 가려면 저녁 7시, 아니 8시가 넘을 텐데 어떻게 하지? 막상 가더라도 큰 도시에서 알베르게를 찾으려면 지도 보고 한 참을 헤매야 할 텐데.. 오후부터 새끼발가락에 통증이 느껴지는 것이 그토록 걱정했던 물집이 생긴 것 같기도 했다. 어제의 악몽이 다시 떠올랐다. 오늘도 눈물을 흘리며 빨래를 할 수는 없었고, 어제처럼 숙소를 달라는 나의 기도가 또 응답받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다리는 아프고 어깨는 더 쓰라렸다. 도저히 걸어서 못 갈 것 같아 여기서 자 버릴 까 하고 동네를 둘러보는데 그렇게 눈에 잘 띄던 알베르게도 안 보인다. 그냥 조용한 주택가였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신기루를 본다고 한다. 비야바는 나에게 팜플로나에 도착했다는 신기루였었다.

비야바에서 숙소 찾기를 포기하고 어떻게든 목적지인 팜플로나에 들어가야만 했다. 먼저 비싸던 싸던 지갑 사정을 고려할 상황이 아니었다. 일단 숙소 먼저 알아보는 것이 제일 급한 일이라, 호텔 예약사이트를 통해 순례길에서 가장 가까워 보이는 나바라 종합병원 근처의 값싼 호텔을 예약했다. 잘 곳은 정했으니 어떻게 든 걸어서 가볼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발가락 상황이 예사롭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끝까지 두발로 걸어 가는지, 차 타고 가는지 누가 감시하는 것도 아니고, 걸어서 완주한다고 훈장 달아 주고 신문에 나는 것도 아니잖아!"

겨우 10km인데…이 정도야 괜찮겠지! 나머지 700km는 걸어갈 건데... 하면서 시내까지 버스를 타기로 결정했다. 혹시 몰라 버스노선을 확인하고 있는데 스페인 사람처럼 보이는 3명이 나타나 어디 가냐고 묻는다?

헉! 이 조용한 변두리 마을에 등산화 신고 배낭 메고, 더구나 배낭에 매달린 조개껍질 때문에 순례자가 아니라 인근 산에 올라갔다 내려가는 동양인 등산객이라고 거짓말할 수도 없었다

'이 사람들이 걷지 않고 버스 타려는 내 불순한 의도를 눈치챈 건가? 여기 사람들은 걸어가는 순례만 인정하지 중간에 버스 타고, 택시 타는 것을 보면 순례자가 아니라고 까 인다고 하던데?’

나바라 종합병원 근처에 간다고 하니 자기들도 같은 버스를 탄다면서 이미 내가 구글맵으로 검색해서 알고 있는 버스 번호를 알려 준다.

주머니를 뒤져 동전을 꺼내는데 버스에 먼저 탄 그들이 자기들이 낼 테니 괜찮다고 그냥 타라고 한다.

괜찮다고.. 돈을 주겠다고 해도 한사코 사양한다. 외국에서 이방인에게 이런 예기치 않은 친절을 받게 되면 괜한 의심이 생기고, 머리 회전이 빨라진다.

‘3 대 1, 싸우면 누가 이길까?’


물론 3명 중에 한 명은 여자지만 걱정이 되었다. 팜플로나까지 나를 데리고 가서 다른 애들과 합류해 돈과 여권을 뺏으면 어떻게 하지? 유럽에는 아세안에 대한 묻지마 테러도 있다고 하던데.? 그 멀고 먼 동양에서 왜 여기까지 와서 자기네 땅에 똥 싸고 오줌 누며 돌아다녀 환경을 더럽히는지 따지면 어떻게 하지? 그들의 호의를 감사함이 아니라 오히려 의심의 눈으로 본 것이다.

가슴에 매달고 다닌 작은 배낭을 두 손으로 감싸 쥔 나에게 그들은 자기소개를 했다. 베네수엘라에서 일거리를 찾아 스페인으로 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우고 챠베스 대통령이 포퓰러리즘으로 퍼주기 정치를 하다가 베네수엘라 경제가 거덜이 났고,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고국을 떠나 외국으로 엑소더스 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그들도 그중 하나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기는 한국이 좋다고 한다. 이유를 물으니 얼굴을 붉히면서 걸 그룹이 너무 이쁘단다. 유튜브에서 봤다면서…

언젠가는 한국에 가보고 싶다고 하며 1인 평균 월 최저소득이 얼마인지 묻는다. 내가 통계청 직원 도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알겠는가? 구글로 검색해서 알려주니 여기서 자기들이 받고 있는 임금과 비슷하다고 한다. 스페인의 버스비는 원화로 환산하면 약 2천 원이고, 바르셀로나 같은 큰 도시에 나가게 되면 1유로 더 비싸다. 취업 비자가 아니어서 알바해서 한 달에 겨우 1,000유로쯤 번다고 했는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시커먼 동양인의 차비를 대신 내주는 이 이방인에 대한 과분한 친절은 뭘까?

"부엔 카미노”라고 인사하며 내리는 그들의 선한 눈을 보면서 그들의 호의를 의심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순례길 랜드마크. 용서의 언덕 Alto del Pedron. 나도 용서를 빌었다.

팜플로라는 나바라주의 주도이고 대학 도시로 근처에 공항도 있었다. 이제 겨우 여정을 시작한 지 삼일밖에 안됐지만 너무 힘들어 팜플로나에서 바르셀로나를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가 버릴까 하고 고민했었다. 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버스비를 대신 내주며 “부엔 카미노“ 하고 응원해준 3명의 수호천사가 계속 떠올라 포기할 수 없었다.


로스아르코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절뚝거리면서 마을 광장에 들어서니 산타클로스처럼 턱수염이 더부룩한 스페인 아저씨가 카페 앞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자기 앞의 의자를 내밀면서 쉬었다 가라고 한다. 다리를 왜 저냐고 묻길래 물집이 심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실로 터뜨려야 한다면서 낡디 낡은 등산배낭에서 뭔가를 꺼낸다. 어제 터뜨려서 괜찮다고 했지만 속 마음은 ‘혹시 소독안된 바늘을 꺼내면 어떻게 하나? 싫다고 하면 기분을 상하게 할 텐데.. 그러다 상처가 덧나면 더 큰일인데..’ 생각하면서 그의 관심과 친절이 꺼림칙했다.

배낭 안에서 꺼낸 것은 예상대로 실이 달린 바늘이 맞았다 우려와 달리 멸균해서 1회용 소독비닐에 밀봉돼 있기는 한데 그 크기가 엄지손톱만 하고 끝이 갈고리처럼 휘어져 있었다. 그 가공할 바늘의 크기로 미루어 인체용이 아니라 소나 말 같은 대동물의 상처를 꿰맬 때 사용하는 바늘 같았다.

이런 불안을 눈치챘는지 이거 소독된 거니 안심하라고 한다. 고맙다고.. 내가 하겠다고 했더니 자기가 해주겠다고 한다.

"그 큰 바늘로? 내 물집을 터뜨린다고?"

물집에 바늘을 대자 마자 맑은 물이 실을 타고 흘러내린다. 어제 그만큼 짜내고 오후 내내 햇볕에 발가락을 일광욕시켰는데.. 오늘 걸으면서 또 물이 찬 것이다. 완전히 짜야한다면서 씻지도 않은 내 발가락을 그는 자신의 두 손으로 쥐어짠다. “아~~~ 아파요!”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하면서 또 배낭에서 뭘 주섬주섬 꺼낸다.

'어 이건 돼지 껍데기?'

방수용 밴드인데 이것도 동물용 인지 그 크기가 A4지 복사지만큼 크다. 역시 바늘처럼 소독돼서 밀봉돼 있었다. 주머니칼을 꺼내 발가락 크기에 맞게 잘라서 붙여 주더니 남은 돼지 껍데기를 나에게 내민다. 상처에 물들어 가면 덧나니 가지고 다니면서 붙이라고 한다. 나도 방수밴드 있으니 아저씨 쓰시라고.. 미안해서 어떻게 제가 그걸 가지느냐고 했더니 자기는 한 장 더 있으니 그냥 가지라고 한다. 광장 한 복판에서 발가락 수술을 끝낸 후 맥주 한잔 사 드리겠다고 했더니 이미 마셔서 괜찮다고 다시 만나자고 하면서 일어선다. 이름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세뇰”이라고 부르란다. 스페인어에 문외한인 나는 세뇰이 진짜 이름인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Señor 즉, 그냥 아저씨다.

그 세뇰은 이름도 안 가르쳐 주고 돼지껍데기 한 장을 덩그러니 탁자 위에 남겨놓고 앞서 갔다. 순례길 동안 길에서 다시 만나기를 그토록 바랬으나 산티아고에 도착할 때까지 만나지를 못했다.

용서의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전경. 산이던 사회생활이던 정상에 오른 보람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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