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mex lectularius

카미노 데 산티아고 - 다시 시험에 들다

by 알토

새벽 네 시, 다들 자고 있는 이 시간에 공용화장실 변기 위에 앉아있다. 해가 뜨려면 아직 4시간이나 남아 있다. 샤워를 다시 하고 옷을 갈아입었지만 침대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다른 순례자들은 모두 잠든 시간. 불 켜놓고 해 뜨길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은 화장실 밖에 없었다. 지피(知彼)! 적을 알기 전에는 잠들 수 없었다. 구글 검색을 했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작은 벌레의 학명까지 알게 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잡다한 상식이 또 하나 늘어나는 순간이었으나 내 두 눈은 잠을 못 자서 붉게 충혈돼 있었다.


<빈대> 영어로 Bedbug. 정식 학명은 Cimex lectularius. 몸길이는 5mm 안팎. 동글납작한 모양이며 몸빛은 붉은색을 띤 갈색이다. 몸이 작고, 편평한 타원형이어서 아주 좁은 틈에 숨을 수 있다. 밤에 활동하며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 빈대에 물리면 몹시 가렵기 때문에 사람과 작은 동물에게는 심각한 해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병을 전염시키지는 않는다.

< 출처: 위키피디아>

빈대의 숙주는 원래 동굴 안 박쥐였으나 원시인들이 동굴생활을 시작하면서 인간이 빈대의 숙주가 되었다. 원시인의 이동경로를 따라 지구 곳곳으로 빈대들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 1990년 이후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발견된 사례는 없으며, 어쩌다 발견되는 것은 주로 해외에서 유입된 사례다. 2차 대전 이후 살충제인 DDT의 무차별 남용으로 미국에서도 사려졌으나 2004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이 해충이 발견돼 방역회사와 숙박업계를 긴장시켰다.

< 출처: 나무 위키 >


놀랍게도 이 벌레를 다룬 내용이 수십 건 검색되었고 그 해악이 놀라웠다.

빈대 죽지 않고 또 왔다. 침실에 출몰한 빈대를 퇴치하는 방법. 빈대 감염, 피부질환. 빈대에 물리지 마세요. 빈대를 안전하게 퇴치하는 방법. 등등 수많은 페이지가 올라와 있었다.


나를 물고 도주한 유력한 용의자! 아니, 용의해충은 빈대였다. 그러나 혐오스러운 흡혈곤충은 빈대 말고도 2가지가 더 있었다. 벼룩과 진드기였다.

<벼룩>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나 새의 피를 빨아먹으며 산다. 세계 각지에 널리 분포한다. 몸길이는 일반적으로 0.5~1mm이나 흡혈 진드기는 몸길이가 약 2mm에 이른다.

<진드기>는 사람과 가축에 유해한 것은 약 10%에 불과하고 90%가 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어떤 진드기는 밤에만 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낮에는 갈라진 틈 속에 숨어 지낸다.


빈대냐 벼룩이냐 아니면 진드기냐? 헷갈리기 시작했다. 지치면 길가 아무 데나 앉아서 쉬었으니 벼룩이나 진드기가 배낭에 붙었다가 밤에 출몰했을 수도 있다. 애꿎은 빈대에게 누명을 씌운 건 아닌가? 범죄현장에서 벌레가 목격된 적은 없었다. 모두 자고 있는데 불 켜고 소란을 떨 수도 없었고, 그저 벌레가 기어 다니면서 피를 빤 흡혈의 흉터와 심한 가려움. 이 두가지가 증거의 전부였다.


'빈대떡도 빈대와 관련이 있을까? '

늘 그렇듯이 잠이 안 오니 쓸데없는 호기심이 발동한다.

빈대떡은 결백했다. 국어사전을 검색해 보니 빈대처럼 납작하게 생겼다고 해서 빈대떡이라고 부른다는 설, 또는 가난한 사람들, 즉 빈자(貧者)들에게 나눠 주는 음식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 병저의 중국식 발음인 '빙져'에서 왔다는 설 등이 있었다.

빈대떡을 검색하다 보니 어느덧 나는 빈대떡으로 유명한 '광장시장', '광장시장 맛집', 그리고 나도 모르게 '육회' 를 검색하고 있었다.

창가가 뿌옇게 밝아지기 시작하면서 잠이 깨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왜<육회> 를 검색하고 있지? 1시간 전에 뭘 검색하고 있었지? 아 그렇지 벌레생활 탐구였지!”

한국에 돌아가서 먹고 싶은 음식 리스트가 아니었다.

입가에 고인 침을 닦고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타파스. 순대와 맛이 비슷했다


여정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물집도 어느 정도 아물고, 걷는 것도 전보다 나아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한국으로 도망 칠 궁리만 하다가 “너는 누구니?”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빈대가 나를 시험에 들게 한 것이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다른 알베르게는 휴업 중이었고, 작은 마을에는 호텔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 한 곳 밖에 없었다. 막상 들어가 보니 이층침대로 꽉 찬 큰방이 통째로 비어 있었다. 이미 침낭을 펴고 누워 있던 순례자 2명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옆방이 만실이라, 비워둔 방을 오후 늦게 열어준 것이다. 오늘은 조용히 자겠구나 생각하며 일부러 창가 구석진 곳에 짐을 풀었다.

밤이면 알베르게에는 코골이들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다들 피곤하니 나도 골고, 아래 침대, 옆 침대, 남녀노소 모두 코를 곤다. 귀마개를 하고 잤지만 이따금 가공할 위력의 코골이와 같은 방에서 묵게 되는데 그저 뜬 눈으로 날 밤을 샐 수밖에 없다.

50명 들어가는 큰 방에 단 세 명이 자니 오래간만에 조용한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뻤다.

새벽 3시, 코 고는 소리에 잠을 깬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가려워서 잠을 깼다. 빈대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한국에서 가져간 모기약을 팔에 바르고 다시 잠들었다.

다음날부터 벌레에 물린 곳이 빨갛게 변하면서 가렵기 시작하는데 모기 물린 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가려웠다. 중간에 쉴 때마다 모기약을 수없이 바르고, 긁어대도 소용이 없었다. 특히 새벽 3~4시경, 잠결에 가려움이 심해지는데 밤마다 잠을 못 자서 미칠 지경이 되었다.

코인 세탁소에서 침낭과 옷을 빨고, 건조기로 말리기도 했었다. 빈대는 밝은 곳을 싫어한다기에 햇볕에 옷가지와 침낭을 한나절 내내 널어놓기도 했었다. 흉터를 보여주고 약국에서 처방받은 연고를 며칠 동안 바르다 보니 좀 나아졌지만 빈대가 남긴 흉터는 처참하고 흉했다.

흉터가 아물면서 마음의 평화를 다시 찾는가 했는데 갈리시아 지방에서 다시 빈대의 습격을 받게 되었다. 밝은 곳에서 살펴보니 그야말로 참극의 현장이다. 이번에는 팔이 아니라 허벅지와 엉덩이가 목표물이었다.

수시로 연고를 바르라고 했는데...... 길에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와 허벅지를 긁어대는 변태 순례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연고를 바르는 횟수가 줄어드니 상처가 아물지 않고 가려워서 더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항히스타민제가 효과가 있다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피부과가 있는 대도시로 가야 했다.

산티아고에 도착해 밑창이 덜렁거려 이제는 못쓰게 된 등산화, 30일 동안 업고 다닌 소중한 배낭, 침낭, 속옷, 바지, 셔츠, 수건 등 섬유로 된 것은 다 버리고 남은 여정에 꼭 필요한 몇 가지만 챙겼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마자 피부과를 찾았다. 닫힌 철문 앞에 서서 벨을 누르니 문이 열렸는데, 피부과는 맞지만 우리나라처럼 주름살, 주근깨, 미백, 레이저 등 미용분야를 다루는 피부과였다. 여자 원장, 간호사 한 명, 달랑 두 명 있는 피부과에 시커멓고 꾀죄죄한 동양인이 불쑥 찾아왔으니 간호사가 놀랄 만도 했다.

"순례길에서 빈대 물린 것 같아요.” 상처를 보여 주니 확대경으로 잠깐 보고 빈대에 물린 것이 맞다고 한다.

처방전을 줄 테니 약국에 가서 약을 사라고 내민다.

병원비가 비싸냐고 물었더니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면서 큰 소리로 “NO!”라고 말한다.

진료실에서 나와 계산하려니 90유로란다!

헉...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작은 일 때문에 큰일을 망친다는 뜻으로 쓰인다. 막상 빈대에 물려 보니 그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게 되었다.

잠 못 자서 십 여일을 괴로워해 본 사람이라면 초가집이 아니라 아파트에 살더라도 불을 지르고 싶었을 것이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santiago compostela )에서

stella는 라틴어로 별 이다. Compostela는 별들의 들판.


이제는 볼펜 똥처럼 희미해진 흉터를 서로 연결하면 밤하늘의 별자리 같다. 별자리는 엉덩이에 문신처럼 남아

별들의 들판, Compostela에 내가 있었음을 지금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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