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데 산티아고 -Epilogue

당신은 반드시 집으로 돌아온답니다.

by 알토

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국을 떠나는 날 딸아이가 건네준 병뚜껑을 순례길 내내 모시고 다니다가 십자가 아래 돌 틈에 고이 숨겨두고 왔었다. 두 가지 약속 중 하나는 지켰지만 나는 여전히 담배를 피우고 있다.

내가 술자리에서 그 먼길을 걸었다고 잘난 척을 하거나 순례길을 다녀온 것을 전해 들은 지인들은 대게 두 가지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인다.

“그 먼데를 뭐하러 돈 내고 가서 고생했니?” 하면서 한심하다는 듯한 시선으로 보거나 또는 “부럽다! 나도 가고 싶은데!” 하면서 맞장구를 쳐준다.

우리는 살면서 소망했던 무엇인가를 이루고, 평소 갖고 싶었던 것을 사고, 가보지 않은 곳으로 떠나기를 꿈꾼다. 그러나 막상 원했던 것을 이루거나 소유하게 되면 쉽게 싫증을 내거나 이유 없는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어쩌면 목적지에 도착하고, 결심한 목표를 이루었다는 최종 결과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740km의 도보여행을 끝냈다는 자기만족과 남들이 쉽게 못하는 일(아마도 대부분 시간을 내지 못해서)을 했다는 성취감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그 길에서 겪고, 느끼고, 냄새 맡고, 들었던 것들이 더 소중한지도 모른다.

지난주에 무엇을 했고,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내가 설레는 마음으로 순례길 첫 발걸음을 떼었던 프랑스 남쪽 끝 마을 생장의 아름다운 언덕, 피레네 산맥의 얼룩이 양 떼들, 그리고 풀밭에 앉아 쉬려다 기겁한 그 귀여운 양들이 싸놓은 엄청난 똥들, 매일 끝도 없이 펼쳐지던 메세타 평원의 황량한 밀밭, 더위에 시커멓게 타버린 해바라기, 하늘에 큰 불이라도 난 것처럼 황홀한 석양을 보여주던 시골마을, 하루 종일 흘린 땀을 식혀 주던 메세타의 바람, 마치 길에 뒹구는 자갈처럼 그 길 위에 함부로 밤을 뿌려대던 밤나무 숲길,

"항구에 정박한 배는 배가 아니다”라고 새겨진 가슴 짠한 어린 순례자의 비석. 그 길에서 마주한 수많은 것들이 마음 한구석에 마치 문신처럼 박혀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순례 길은 마라톤이나 산을 오르는 등산이 아니며 남들보다 일찍 도착했다고 해서 트로피를 주거나, 상금을 주거나, 주민들이 달려 나와 헹가래를 쳐 주거나, 군대 가는 것을 면제 해 주지도 않는다. 자기 페이스, 발바닥과 무릎의 상태에 맞춰 적게 걷는 날도 있고, 보폭을 크게 걷는 날도 있다. 그 길을 걷고 한참 후에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무슨 거창한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수립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그 목표를 이루는 것이 삶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일 걸으면서 마주하게 되는 그 모든 작고, 때로는 하찮은 일상들이 어쩌면 나의 진실한 내면과 연결되는 통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치 이미 결혼해서 쓴맛, 단맛 다 본 사람이 아직 미혼인 사람에게 "결혼하지 마!. 별거 아니야" 하면서 되지도 않는 충고를 하는 것 같지만 그 길을 가기 위해 좁은 비행기 좌석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12시간 동안 8000km를 비행해 먼 나라로 갈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평범한 출퇴근 또는 등하교 길에서, 아니면 저녁식사를 하고 동네 근처를 한 바퀴 돌면서, 한강변에 나가 봄이 오는 고수부지를 걸으며 우리 발바닥에 닿는 땅의 느낌과 길 위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게 되는 모든 것에서 갑자기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순례길의 끝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나 중세에 지구의 끝이라고 생각한 피네스테라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결국 집으로 돌아오고 각자의 순례를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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