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뇽의 예수

카미노 데 산티아고- Eskerrik asko

by 알토

"영혼의 쉼을 원한다면 핸드폰을 놔두고 가세요"라고 존 브리얼리는 그의 책에서 충고했지만 핸드폰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매일 저녁 영상통화로 아내에게 나의 알리바이를 입증해야 했다. 아내와 나는 회사생활을 마무리하면 함께 유럽여행을 가자고 계획을 세웠었다. 중간에 걷기를 포기하고, 유럽의 멋진 나라들로 나 혼자 튈까 봐 한국에서 나를 감시하고 있었다.

핸드폰으로 사진도 찍어야 했고, 무엇보다 지도가 필요했다. 시골길에서는 노란색 화살표만 따라 가면 길을 잃지 않는다고 했지만 대도시에 나가면 화살표가 갑자기 사라지거나, 동네 개구쟁이들이 엉뚱한 방향에 노란색 화살표를 그어 놓아 길을 잃는 낭패를 당한 경험도 있었다. 숙소는 목적지에 도착해서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알베르게에 들러 침대가 남아 있는지 물어보고, 있다면 들어가고 없다고 하면 발길을 돌려 다른 숙소를 찾았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작은 마을 그라뇽에는 알베르게가 2개밖에 검색되지 않았다. 길에서 헤매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도움을 주는 다른 순례자가 있었다. 유료지만 핸드폰 어플을 추천해 준다. 이 앱을 통해 순례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지도를 검색할 수 있고, 오늘 얼마나 걸었는지, 앞으로 남은 길의 등고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앱 나도 있는데. 운동할 때 쓰던 거......"

그런데 그들의 마지막 말에 정신이 번쩍 났다. 알베르게를 미리 예약할 수 있다고 했다.

"뭐~? 정말이야?! 알베르게를 예약할 수 있다니.."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 알베르게는 전화 또는 인터넷으로 예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먼저 들어온 순서대로 침대를 배정한다. "선입고 선배정"이 원칙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왜 그동안 숙소 잡기가 힘들었는지 알게 되었다. 신문물을 전해준 그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바로 앱을 설치했다. 구글맵에서 검색이 안 되는 알베르게까지 최신 정보가 소상히 검색되었다. 전화번호, 주소, 심지어 웹사이트가 있는 알베르게도 많았다.

'그래,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더니 그 말이 맞았구나.' 나의 무지를 한탄하고 혹시 몰라 한국에서 쓰던 숙박 어플을 검색해 보니 거기서도 저가 숙박시설, 즉 알베르게가 예약되었다. 출장을 다니면서 숙박 앱을 사용했었지만 호텔만 예약이 된다고 생각했었다. 자세히 보니 20 유로 이하의 저가 숙소도 예약이 가능했다. 그 이후 나는 이 소중한 문명의 도구인 핸드폰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24시간, 깨어 있을 때나 잘 때나 늘 함께했다. 오후가 되면 걷는 속도에 맞춰, 다음 목적지를 정하고 온라인으로 숙소를 예약하기 시작했다.

가히 호모 에렉투스가 지혜를 사용하기 시작하는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는 놀라운 순간이었다. 숙소를 미리 예약해 두니 마음이 더없이 편하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러나 이미 나는 그라뇽에서 숙소를 정했다.

알베르게는 개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 지자체가 운영하는 곳, 협회에서 운영하는 곳, 성당이나 수녀원에서 침식을 제공하는 곳 등 다양하다. 경험상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 가격은 좀 비쌌지만 시설이 괜찮았다. 그라뇽의 알베르게는 기부제였다. 아침에 떠나면서 주고 싶은 금액만큼 저금통에 돈을 넣고 길을 나서면 된다. 입구의 간판부터 오랜 세월 비에 젖어 벗겨지고, 색이 바래 있었다. 대충 읽어 보니 원래 주인이 알베르게를 운영하다가 이제는 장사를 접고, 지금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 기부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다시 밖으로 나오고 싶었다. 기대 이상으로 상당히 남루했기 때문이다. 1층에는 식당 겸 카페, 2층은 주방과 욕실 그리고 침대 대여섯 개. 3층에도 침실이 2개 정도 있는데 방 사이에 문이 없는 개방형 구조였다. 심지어 2층과 3층 사이 복도에도 침대가 있었다. 마치 지진이나 화산 폭발 같은 자연재해를 당해 대피소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놀랍게도 저녁 식사까지 제공한다고 한다. 저녁 먹으러 오라고 호스트인 할아버지는 내 손을 꼭 붙잡고 당부하셨지만 남루함에 맘이 상한 나는 그 약속을 배신했다. 맥주와 샌드위치로 저녁을 먹고 일부러 천천히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밥 먹으러 왜 안 왔냐고, 저녁은 먹었냐고 하시면서 집 나간 탕자를 맞듯이 반갑게 맞으신다. 설거지를 마친 할아버지는 주방으로 가시더니 콧노래를 부르며 순례자들의 아침을 준비하신다.

조금 미안해져서 "제가 뭐 좀 도와 드릴까요? " 하고 물었더니 하루 종일 걷느라 힘들었을 텐데 가서 일찍 자라고 사양하신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유창하셔서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바스크인 이라고 소개하신 할아버지는 조선업 관련 회사에 오랫동안 근무했었고 인천, 부산에도 와 본 적이 있다고 하신다. 은퇴하고 순례길에서 자원봉사자로 봉사하는 삶을 산다고 하셨는데, 무려 일흔 살 이셨다. 밤 11시가 넘어 순례자들의 아침식사 준비를 마친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셨다.

스페인은 17개의 자치구로 구성되어 있다. 생장에서 출발하는 순례길은 나바라, 라리오하,카스디야이레온 을 지나 마지막 목적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가 있는 갈리시아 지방에 이른다. 바스크 지방은 현재 행정구역상 라리오하 위의 지방이지만 고대 바스크인 들은 지금의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북부에 살았다고 한다. 출발지인 프랑스 생장피드 포드가 고대 바스크의 수도였으며, 이베리아 반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이라고 한다. 스페인 내전( 1936년- 1939년) 동안 프랑코 정권에 대항했기 때문에 많은 탄압을 받았다.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2006년 마드리드 공항에서 폭탄테러를 하기도 했지만 2011년 4월 영구 휴전과 무장활동을 중지했다.

<참조:위키피디아>

< 출처: 위키피디아>

이름을 여쭤 봤다. 바스크어로 Josu UnÇu. 여수 옹수 라고 하신다. 여수?...??? 혹시 영어로 쓰면 어떻게 되나요? 놀랍게도 바스크어로 Josu는 영어로 <Jesus>였다.

머리털이 쭈뼛서는 순간이다.

문을 나서는 할아버지는 아침에는 못 온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부엔 카미노"라고 인사하셨고, 나는 바스크어로

"eskerrik asko"라고 인사했다.

"에스 케리 카스코"는 할아버지가 알려주신

"Thank you" 다.

살면서 한 번도 발음해 보지 못했던 '감사'를 전했다.


방에 들어오니 한국인 순례자들이 몇 명 있었다.

"저녁식사 어땠어요? "

와인에 기분 좋게 취한 그들은 엄지를 척 세우며 나에게 자랑질했다.

"따봉!

순례길에서 가끔 특별한 일을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

믿기지 않지만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길이 헷갈릴 때마다 흰나비가 나타나서 길을 안내했다는 분, 걷고 나서 고질적인 병이 나았다는 기사도 봤다. 순례길을 다녀온 분들은 보통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쓰는데 걷기 전에는 솔직히 소설을 쓴 건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했다.

아니었다.

친절이라는 기적은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할아버지 저녁 안 먹어서 죄송해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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