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데 산티아고 - 부르고스
고요하고 한가로운 시골 마을을 벗어나 도시로 나오게 되면 순례자들은 당황스러워진다. 고요와 평화에 익숙해진 귀에는 도시 외곽을 달리는 수많은 화물차의 굉음이 칼날처럼 파고든다. 천만명이 24시간 와글대는 도시에서 떠나왔지만 며칠 동안 포도나무와 흙먼지 날리는 들판, 밤나무 숲길의 고즈넉함에 익숙해진 것이다. 차들이 내뿜는 매연, 경적 소리, 길을 가득 메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조개껍데기를 배낭에 매단 순례자들은 노란색 화살표를 놓치고 폭풍을 만난 방향계처럼 마구 흔들린다.
부르고스에 들어왔다. 도시에서는 길바닥의 화살표를 찾기보다 구글맵의 길 찾기를 실행시키는 것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빠른 방법이다. 팜플로나는 버스 타고 지나왔으니 부르고스는 순례길에서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주도이자 대도시다. 인구 36만 명이 살고, 면적은 서울의 육 분의 일 정도 된다고 한다. 숙소로 정한 시립 알베르게는 15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큰 규모와 저렴하면서도 깨끗한 시설로 유명했다. 아침 일찍 출발을 서둘렀지만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아직 문을 열지도 않았는데 이십여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설도 좋지만 스페인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다고 하는 부르고스 대성당까지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니 위치도 탁월했다.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청바지와 셔츠 차림으로 카메라를 들고 나서니 휴가 온 관광객이 된 기분이다.
부르고스 대성당 (Cathedral of Saint Mary of Burgos) 은 1221년 공사를 시작해 1567년 완공된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관광지였다. 최근 보수공사를 해서 외관도 웅장하지만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너무나 멋있었다. 성당 첨탑으로 화려한 별 모양 창이 나있고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자칫 엄숙하고 음산해 보일 수 있는 성당 안 구석구석까지 거룩함의 빛을 비쳐주고 있었다.
부르고스 성에 올라가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한가로운 오후를 보냈다. 성당 앞 시청 주위에는 카페, 레스토랑, 기념품 판매점. 온갖 상점들이 몰려 있었는데 무엇보다 반가운 건 아시아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일식당에서 초밥과 미소국으로 점심을 먹고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구시가지를 어슬렁거리니 구치소에 감금되었다가 보석으로 잠시 출소한 기분이었다.
비록 카미노가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도시생활에 익숙한 나에게 그동안의 고요와 평화가 무료하고 심심했는지도 모른다.
저만치 경주에서 봤던 김유신 장군 기마상과 비슷한 기마상이 보인다. 사진 한 장 찍고 무심히 지나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스페인의 국민영웅 엘 시드 (El CID ) 동상이란다.
"엘 시드? 만화영화 제목 아닌가?".
엘 시드는 2003년 한국에서 개봉된 만화영화로 할리우드 타도를 외치며 야심 차게 제작된 스페인 애니메이션이었다. 그 당시 포스터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니모를 찾아서, 신밧드에 이은 최강의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패키지여행이었으면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면서 역사에 대한 지식도 깊어지련만 허접한 나의 지식은 스페인의 국민영웅을 만화영화 제목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엘 시드는 2003년 대한민국 극장가에서 열대어 니모와 경쟁하던 만화영화 제목이 아니고 영웅의 별칭이었다.
본명은 로드리고 디아스 데 비바르(Rodrigo Díaz de Vivar. 1043-1099)로 부르고스 근처 Vivar del Cid에서 태어났다. 즉, “Vivar의 Rodrigo Díaz” 다.
중세 스페인 북부 카스티야 왕국의 귀족이자 장군으로 스페인에서 유치원 아이들도 다 아는 레콩키스타의 영웅이라고 한다. 스페인어인 레콩키스타(Reconquista)는 영어로 reconquest로 이슬람 제국에 빼앗긴 이베리아 반도를 다시 찾는 722년 에서 1492년까지 770년 동안의 기독교왕국의 국토 재정복을 지칭한다.
711년 자발 타리크가 이끄는 베르베르족 이슬람군이 북아프리카를 떠나 기독교도인 서고트족이 살고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한다. 그는 처음 발을 디딘 반도의 최남단 바위산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데 "타리크의 산". 지금의 지브롤터다. 이베리아 반도와 모로코 사이 바다, 지브롤터 해협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고 호수 같은 지중해에서 대양으로 나가는 관문이지만 고작 가장 넓은 곳의 폭이 50여 km라고 한다. 부산에서 맑은 날 볼 수 있다는 대마도까지의 거리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브롤터는 지리적으로 스페인의 최남단 육지지만 1713년부터 영국령이다.
이베리아 반도에 상륙한 이슬람군은 불과 40년 만에 이베리아 반도 대부분을 점령하는데 처음 몇 백 년 동안은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면서 기독교, 유대인 들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았다고 한다.
이 당시 이베리아 반도에 살던 아랍인들, 즉 무어인들이 로드리고 디아스를 "엘 시드"라고 불렀으며 아랍어 al Sayyid (The Lord)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그를 El Campeador라고 불렀는데 Compeador는 챔피언, 의역하자면 "전투의 달인" 쯤으로 해석하면 될듯하다.
그는 기독교 대 이슬람 간의 문명의 싸움에서 국토회복이라는 대의를 위해 싸운 영웅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지만 한때 이슬람 영주를 위해 기독교 군대와 싸우기도 했고, 이슬람 소국들을 보호해주고 조공을 받기도 한 탁월한 용병부대의 지휘관이었다. 워낙 전투에 능해서 이슬람, 기독교 양쪽 제후들이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싸움 잘하는 엘 시드에 SOS를 요청했던 것 같다. 말년에는 이슬람 영주가 지배하는 스페인 동쪽 발렌시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자 이를 제압하고 스스로 영주가 된다. 결국 이런 배경으로 기독교뿐 아니라 무어인들 사이에서 그의 이름이 유명세를 탄 것으로 보인다. 발렌시아에서 5년 동안 평화로운 세월을 보냈으나 북아프리카의 다른 이슬람 왕조가 발렌 시아를 침략하고 엘 시드는 전쟁 중 사망한다. 그의 시신은 사망 후 2년 만에 고향인 부르고스로 돌아와 부르고스 대성당 가운데 묻힌다.
성당 안에 평화롭게 잠든 엘 시드가 800년이 지나 스페인의 영웅으로 다시 부활한다. 19세기 말 식민지 쟁탈전에서 날로 쇠퇴하던 스페인은 쿠바, 필리핀을 사이에 두고 미국과 전쟁을 벌인다.
전쟁은 영웅이 필요하고, 국민들의 단합과 반드시 이긴다는 객관적이지 않은 승리의 신념을 심어 주려면 어벤져의 캡틴 아메리카 같은 히어로가 필요하다. 그 옛날 엘 시드가 했던 것처럼 외세의 공격에서 스페인의 식민지를 지켜내자고 외쳤을 것이다. 명분보다 실리에 움직인 엘 시드의 부끄러운 과거는 묻어버리고, 레콩키스타의 영웅으로 미화되었는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 20세기 전반 스페인 내전에서도 이런 일이 반복된다. 내전에서 승리를 확신한 프랑코 장군은 자신을 제2의 엘시드로 묘사했으며,
1955년 부르고스에 거대한 엘시드 기마상을 건립했다고 한다.
< 참조: 주경철의 히스토리 노바. 조선일보 2020.1.22>
바로 조금 전에 일어난 사건의 보도기사도 작성자의 논조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채색되곤 한다. 하물며 1000년 전 역사에 대해 객관성을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 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역사에 대한 왜곡된 해석을 경계하고, 시대와 이념이 만든 영웅이나 선동은 아닌지 냉철하게 눈을 부릅 떠야한다.
그라뇽의 할아버지는 순례길을 걸으면서 옛날 성당이나 성곽의 벽을 유심히 살펴보라고 하셨다. 그 돌을 다듬거나 굽고, 쌓은 일반 백성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징표를 남겨 두었다고 했다. 고되고 힘든 노동에 지친 그들이 후세와 연결되는 끈으로 자신만의 존재성을 표시로 만들어 남긴 것이다.
기독교인가 아니면 이슬람인가 하는 이념전쟁은 지배계급이 자신의 영토를 확장하고 세력을 강화하려는 속내를 숨긴 채 아름답게 포장된 것인지도 모른다.
700년 동안의 전쟁에서 희생되었을 수많은 민중의 피는 이미 지워졌지만, 벽돌에 남아있는 희미한 표시는 길 위에 남아 순례자들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