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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토 May 13. 2020

야구광인 아내와 야알못 남편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찾아온 춘궁기

 아내는 해마다 봄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하는데 프로야구가 개막하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개막이 연기돼서 우울해하더니 5월 5일부터 관중 없는 경기로 게임을 시작하니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한다. LGTwins의 광팬인 아내는 그 미친(?) 팬들의 사이트에 가입해서 서로  소통을 한다. 이기면 이겼다고 서로 자축하고, 지면 졌다고 패인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서로 분노하고, 위로하는 것 같은데 나는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으니 무슨 내용이 오고 가는지 모른다. 아내는 노후에 야구장 근처에 살면서 매일 야구장 가는 것이 유일한 꿈이다. 하지만 나는 야구뿐 아니라 농구 배구 축구 골프 족구 핸드볼.. 공으로 하는 모든 스포츠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잘하지도 못하고, 흥미도 없다.

고백하자면 2002년 월드컵 때도 한 경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없다. 그저 거실에서 아내가 소리를 지르면 방에서 뛰쳐나와 “골 넣었어?”하고 물어보고 다시 방에 들어가 잤다. 심지어 4년마다 치러지는 올림픽이나 전 국민의 관심사인 한일 대항 경기도 안보는 이상한 남자다.

스포츠는 이겼는지 졌는지, 스코어가 어떻게 되는지, 메달을 땄는지 못 땄는지 같은 결과만 알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쭈그리고 앉아서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치면서 응원한다고 해서 결과가 바뀌지도 않는다. 비싼 입장료 내고 경기장에 가서 왜 고생해야 하는지 아내의 팬 심을 이해하지 못했다. 취미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기에 경기가 끝나고 나서도 스포츠 채널로 리뷰를 수도 없이 다시 보는 아내를 박해하지도 않았다.

해마다 시즌이 끝나면 “열 받아서 응원하는 팀을 바꿔 버려야겠다.”라고 셀 수 없이 말하면서도 수십 년 동안 LGTwins를 응원하는 아내다. 아내 앞에서 다른 경쟁 팀을 언급한다던가 하는 자극적인 표현은 우리 집에서 금기 사항이다. 특히 시즌에는 조심해야 한다. 어쩌다 친구들과 술을 먹을 때는 핸드폰으로 중간중간 야구경기 스코어를  확인한다. LGTwins가 이기고 있으면 술자리가 길어져도 되지만 지는 날에는 중간에 술을 먹다가 빨리 귀가해야 한다. 늦으면 패배의 분노가 나를 향해 용암처럼 폭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는 LGTwins 가 8회 말까지 이기고 있어서 마음 놓고 놀다 왔더니 집 안 공기가 싸늘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기고 있다가 9회에 역전을 당한 것이다.

아내의 콜렉션 . 다 싸인볼이다


몇 년 전 겨울, 아내와 처제는 오키나와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선수들 동계훈련을 보고 사인회에 간 것이다.

“그거 구단에서 팬들 선정해서 공짜로 보내주는 거야?”

“누가 공짜로 보내줘. 자기 돈 내고 가는 건데. 신청자가 많아서 간신히 가는 거야 ”

‘경기도 아니고 훈련하는 걸 보러? 그것도 돈 내고 간다고?’ 나로서는 다시 태어나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지만 야구 외에는 별 다른 취미가 없는 아내의 열정에 감동해서 기쁜 마음으로 아내를 배웅했었다.

떠나는 아내는 나에게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엄마한테 고자질하면 죽는다!”   


 야구 시즌이 시작되고 프로야구가 개막되면 우리 집에는 춘궁기가 시작된다. 경기가 없는 겨울에는 찌개나 국도 끓이고 반찬도 준비하지만 야구 경기가 시작되면 식탁의 반찬수가 눈에 띄게 간소해진다. 배추김치, 총각김치, 깍두기 또는 열무김치 같은 김치 3종 세트. 나만 먹는 젓갈이나 장아찌, 콩자반, 오징어무침 같은 재래시장에서 산 밑반찬들이 찌개를 대신해 식탁에 놓인다. 밥은 새로 할 때도 있지만 남은 밥을 전자레인지에 돌리거나 햇반을 먹게 되는 경우도 있다. 주말에는 낮에 경기가 있으니 치킨이나 피자를 배달해서 먹거나 국수처럼 간단히 요리할 수 있고, 설거지가 간소한 음식들이 식탁에 오른다.

빨리 먹고 정리 한 다음 야구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를 굶기지는 않고 직접 식사를 준비하는 아내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해마다 아내는 나를 야구장으로 유인하기 위해 갖가지 당근을 제시한다. 비싼 테이블 석을 구해서 치맥을 사주겠다고 꼬시기도 했고, 생일선물 대신 야구장에 같이 가달라고 애원도  했으며, 응원단 앞에 앉혀 놓고 응원의 재미를 알게 하려고도 노력했었다.

그러나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도통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올해는 아무래도 아내의 외조에 감사하기 위해  한번은 야구장에 가야 할 것 같다.  

LGTwins  파이팅.. 가정의 평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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