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 아툴 가완디

Memento Mori . Amor Fati

by 알토

여러 빈소에서 여러 죽음을 조문하면서도 나는 죽음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다. 죽음은 경험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는다. 아직 죽지 않는 자들은 죽은 자들의 죽음에 개입 할 수 없고, 죽은 자들은 죽지 않는 자들에게 죽음을 설명해 줄 수가 없다..중략

날이 저물고 밤이 오듯이, 구름이 모이고 비가 오듯이 바람이 불고 잎이 지듯이 죽음은 자연현상이라서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다짐 하지만, 그런 보편적 운명의 질서가 개별적 죽음을 위로할 수 없다.

<늙기와 죽기 중/ 김훈 저 >


올해 대학을 갔다는 사내아이 한 명과 고인의 아내가 쓸쓸히 빈소를 지키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 아들의 영정 앞에서 노모는 오열하고 있었다. 노환으로 귀가 안 들려 욕실에 쓰러진 아들을 늦게 발견했다고 자신을 탓했다. 손수건을 건냈지만 눈물도 말라버려 더 이상 슬픔은 묻어 나오지 않았고 같이 울어 주는 것 말고는 남겨진 자들이 할 수 있는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제는 결혼식이나 돌잔치에 가는 일보다 조문을 가는 일이 많아진다.

김훈님의 책에서 소개한 대로 죽음은 자연현상이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 불로초를 애타게 찾았던 진시황도 죽었고, 재벌 회장도, 목사님, 신부님, 스님도 죽는다. 그러나 이 보편적 진리를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 받아 들이는 일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오늘처럼 갑작스러운 죽음을 목격하거나 오랜 투병 생활을 지켜 보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죽음도 마찬가지다. 삶의 꽃잎이 제대로 펴보기도 전에 맞이하는 죽음도 있다. 건강하게 사시다가 천수를 누리고 돌아 가셨다는 죽음도 있다. 살아 있는 자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얼마였던 가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죽음은 그 자체로 비통하고 남겨진 가족에게 깊은 두려움과 상실감을 남긴다. 아무리 종교를 가지고 있고, 기도로 천국을 소원한다고 말하지만 아직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긴 여행을 떠난 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죽음에 대해서 쉽게 대화를 나눌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 조차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상상 조차 하기 싫지만 조문을 다녀오면서 만약 내가 치명적인 질병에 걸리거나 갑자기 찾아온 죽음 앞에 직면 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라는 질문을 해본다. 그런 일은 당분간 생기지 않을 테니 닥쳤을 때 생각해보자고.. 지극히 낙관적인 희망으로 이 질문을 애써 피해야만 할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누구나 내일 일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툴 가완디 저 <어떻게 죽을 것인가-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라는 책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최근 읽은 책들 중에서 제일 공포스러운 내용이며 치명적인 병에 걸린 노년의 슬프지만 현실인 삶들이 소개된다. 그 동안 나와 상관 없을 것 같던 온갖 심각한 환자들의 사례가 나온다. 나의 앞에 닥칠 노년을 생각하면 어떤 공포 영화보다 현실적이고 무섭다. 물론 모든 노인들이 치명적인 질병으로 중환자실에서 연명치료를 받다가 죽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나에게도 중환자실에 들어갈 날이 올지..아니면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을 맞게 될지..

주변에서 갑작스러운 죽음 이나 질병과 마주치거나 이런 우울한 책을 보게 되면 죽음과 질병이 두려워 진다. 아무리 내가 종교를 가지고 있고, 믿음이 주는 천국을 믿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 두고 미지의 세계로 떠난 다는 것은 두렵다. 나이가 들고 노인이 되면 죽음에 대한 공포도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어 보면 그렇지도 않다. 죽음에 직면한 젊은 사람들이 삶에 대해 아쉬워하고 미련을 못 버리는 것처럼 100세가 넘어서도 삶에 집착 하는 것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무리 치명적인 질병으로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남들이 보기에는 죽는 것 보다 못한 삶처럼 보일 지라도 힘든 치료를 이겨내면서 어떻게든 생명의 불씨를 지켜 내려고 애쓴다.

그렇다면 더 이상 이 곤혹스러운 생각을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앞으로 찾아올 노년처럼 죽음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집에 돌아와 내 이름으로 돼있는 은행 과 주식 계좌, 보험증권을 정리했다. 갑작스러운 죽음의 방문을 받거나 질병으로 의식이 없을 경우 가족들이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병들고 노후한 채 오래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자주 했지만 나에게 죽음이 찾아 왔을 때 그 동안 지껄여 댔던 것처럼 이 필연적 진리를 순순히 받아들이게 될지 자신이 생기지 않는다.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품위 있게 하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햇살 잘 드는 청결한 병실 창가에서 영원히 잠들기를 상상해 본적이 있었다. 나도 그렇게 평화로운 죽음을 맞을 수 있을까?


광고인 박웅현은 그의 책 < 여덟단어> 에서 사르트르 묘지 사진과 함께 라틴어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라고 후배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그 후배는 선배처럼 고상하게 라틴어로 화답한다. 아모르 파티 (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 메멘토 모리는 로마시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장군이 개선 행진을 할 때 뒤를 따르는 노예를 시켜 외치게 한 말이라고 한다.

“너도 죽을 수 있으니 지금 너무 우쭐대지 말고 죽음을 기억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라” 는 뜻이다.

역설적이게도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죽음을 접하게 되면 삶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남은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달으면 돈 이나 명예, 권력 같은 껍데기를 내려놓고 사랑하는 가족과 남은 시간을 보내면서 일상의 작은 일에서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숨쉬고, 걷고, 말하고, 보고, 듣고, 냄새 맡고, 화장실 가는 너무나 평범한 일들이 병마와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누군가 에게는 생의 마지막에 해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일지도 모른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지루하고 불행한 삶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과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일상의 소소한 일들이 오늘 하루 신이 나에게 허락한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 하루를 좀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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