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원 남자 원생들은 퇴소 후 군대에 가야 하는가
이룰 수 없는 군필의 꿈
나는 어린 시절 꿈은 군인이 되는 것이었다. 군인을 꿈꾸던 나는 대학 시절 ROTC에 지원하였지만 군 면제라는 이유로 탈락하였다. 그 사건으로 인해 다른 장래를 모색하여 임용고시에 단번에 합격할 수 있었지만 당시에 내가 느낀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는 내가 ROTC에 지원했을 때 안 가도 되는 군대에 왜 굳이 가려고 하느냐며 의아해하였다. 혈기 왕성한 나이에 남들이 다 가는 군대에 못 가는 것이 너무나 기분 나빴다.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 이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대다수가 동의할 것이다. 특히 남자들의 세계에서 군대는 기본 조건이자 필수라는 의식이 자리 잡혀 있다. 회사 등의 모임에서 군대 이야기는 쏠쏠한 안주 거리이며 군 복무는 인맥을 형성하는 데 크고 작은 도움을 준다. 만약 특수부대 출신이라면 더욱 끈끈한 의리로 맺어진 전우애 덕분에 평생 명예와 자부심을 느낄 것이다. 남자의 세계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군대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큰 불편함을 주기도 한다. 나에게 그렇다.
더욱이 고등학교 때 실장이었던 나는 학교 동기들이 군대에 간 동안에 쓸쓸하게 대학에 다녀야 했다. 실장이라는 이유로 친구 50명의 군대 주소를 다 파악하여 친구들의 각 부대로 모두의 소재를 알려 주었다. 그러면서 군대에 가지 않았지만 군에 어떤 유형의 부대가 있는지 저절로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군에 가지 못한 것이 아쉽다. 군필자분들이 볼 때는 이런 생각이 외람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단지 퇴소생이 군대에 안 가는 시간 동안 더 악착같이 일을 해 자립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클 뿐이다. 이 글의 독자도 나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보육원 출신
우리나라는 아동복지시설에서 5년 이상 지낸 사람은 군입대가 면제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를 것이다. 보육원에서 지낸 나도 고등학생 때 알게 된 사실이다. 당시만 해도 군대에 안 가는 것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고 군대에 대한 어떤 환상도 없었다. 내가 만약 일반 가정에서 자랐더라면 군필자인 아버지로부터 군대 이야기를 들었을 것 같다. 아들을 막 출산한 산모도 아기를 보며 앞으로 군대 갈 것을 미리 염려할 정도로 우리 모두에게 군입대는 참으로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부담으로 다가온다.
나의 전작《나는 행복한 고아입니다》에서도 밝혔듯이 퇴소생에게 군 면제는 역차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고아를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오히려 아이들에 대한 상대적인 차별을 유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주변에서 가끔 군대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부끄럽고 긴장이 되었다. 자칫 함께 있는 분들이 왜 군입대가 면제되었는지 자세히 물어보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남들이 다 가는 군대를 나는 왜 안 갔는지 짜증 나기도 하고 가끔은 모멸감이 생기기도 했다. 거짓말로 4대 독자라고 하거나 아버지가 돈이 많아서 그렇다는 둥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상황을 모면했다.
가끔 친구들을 만나거나 다른 모임에 갔을 때 군대 이야기가 나오기라도 하면 나는 그
자리가 부담스러워져서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군대에 대한 거라면 참으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다.
군대에 가지 않는다고 자립이 더 쉬워질까?
나는 궁금하다. 의무 징병제인 우리나라에서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군 입대를 보육원생만 피할 수 있다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 언제 그 법이 시행되었는지, 어떤 이유로 그러한 법이 제정되었는지, 어떤 법에 의해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지 궁금하다. 보육원의 빠른 자립을 위해 정부에서 퇴소생에게 병역의 의무를 면제해 준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것이 당사자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구심이 든다. 물론 이 땅의 모든 퇴소생을 위한 가장 큰 혜택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군 면제가 당사자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퇴소한 청년들 모두가 군에 가지 않는다고 해서 2년 가까운 시간을 군대보다 더 값지게, 유익하게 보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곳을 퇴소하기 오래 전부터 보육원을 벗어나기를 바란다. 하지만 오랫동안 정해진 방식대로 주는 것에만 의존하며 살아온 이들에게 퇴소 후의 시간은 막막하면서도 평생 처음 겪는 외로움과 자유를 맛보게 된다. 특별한 기술 없이 막막한 심정으로 사회에 나온 청년들은 무슨 일을 하면서 살까? 여러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는 청년이 매우 많다.
군 전역자에게는 사회에서 혜택을 주기도 한다. 입사 조건에서 군필을 요구하거나 공무원을 선발할 때는 군가산점을 적용한다. 그리고 이력서를 적을 때도 의무적으로 적게 되어 있다. 사회에서 군 면제자는 좋든 좋지 않든 꼬리표를 달고 사는 셈이다. 신체상의 문제로 군에 입대하지 못하는 분과 달리 퇴소생은 신체가 온전한데도 자신의 문제가 아닌, 즉 부모가 보육원에 맡겨 보육원에 살았다는 이유로 군 면제를 받는 것이다. 부모의 잘못으로 보육원에 맡겨진 우리가 이러한 선물과도 같은 군 면제를 받는 것은 특혜이지 않을까? 군에 못 가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길일까? 부모를 버린 자들에게 그 대가로 군대에 한 번 더 가게 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본다.
더군다나 군대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온다는데 그 많은 것을 배울 기회가 없으니 퇴소생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20대 초반에 친구들이 군대에 갔을 때 같이 놀 친구가 없어 너무나 심심해 어느 한 친구를 면회하러 간 적이 있다. 강원도 어느 산골에 있는 모 부대에 갔는데 그때의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면회 장소로 가면서 남자만이 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군필자만이 아는 그 느낌은 내가 보육원에 있을 때 다섯 살이나 많은 형들 밑에서 온갖 심부름을 하고 괴롭힘을 당한 느낌과 같은 기분이었다. 면회하러 간 것은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섬뜩한 기분이 든다.
군대만큼 힘든 경험을 하는 보육원 아이들
앞서 이야기했지만 시설 퇴소생의 군 면제는 아이들에게 자립할 시간을 벌어주는 매우 훌륭한 제도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한다. 듣는 입장에 따라 매우 황당한 상상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보육원생은 이미 보육원에서 군대를 경험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비록 보육원에 군대처럼 의무적으로 입소한 것은 아니지만, 단체생활을 하며 보육사나 선배의 말을 따라야 하며,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고 함께 먹는 방식으로 살았다. 물론 군생활의 힘듦도 두말할 필요가 없다. 보육원과 군대를 감히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단체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고통은 성인이 되어 군대에서 느끼는 고통보다 훨씬 더 심할 것이다.
또한 군대에서는 보호자들의 면회와 휴가 덕분에 마음의 안정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지만, 보육원생은 친부모를 마음껏 만나지 못하는 매우 절박하고 가슴 아픈 상황에 항상 놓여 있다. 보육원과 군대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군필자에게는 매우 죄송스러운 일이지만, 고아인 나에게 보육원은 군대 이상의 괴로움을 안겨다 주는 곳으로 기억된다. 그뿐만 아니라 군필자에게 군에 다녀온 것은 영광의 훈장처럼 명예로운 것이지만, 고아가 보육원에서 성장한 이력은 항상 나쁜 꼬리표로 따라붙어 평생 괴로움을 안겨줄 수 있다.
보육원에서 5년 이상을 살지 않으면 군에 입대하게 되는데, 이런 경우에 해당해 군 부사관으로 입대한 후배가 있다. 휴가를 나와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보육원에서 산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군 생활은 보육원 생활과 비슷하지만 보육원 생활이 더 괴롭고 힘들다고 했다. 군에서 누구에게 맞으면 알릴 사람이라도 있지만 보육원에서는 맞아도 하소연할 데가 없는 것이 더 참담한 현실이었다.
군 면제를 보완하려면
지금까지 군 복무가 보육원생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살펴보았다면 이제부터는 퇴소생에게 군 면제를 보완하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첫째, 요즘같이 군입대를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에서 퇴소자 중 군에 입대한 자에게는 자립 정착금을 현재보다 훨씬 많이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군에서 기술을 배웠다면 관련 기관에 취직시켜 주는 것이다. 셋째, 방위산업체와 공익요원으로 근무하는 것이다. 물론 그곳에 근무할 때도 자립에 필요한 기술을 배우며 사회에 나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강제로, 의무로 적용할 수도 있으며 지원에 의해서 비밀리에 적용할 수도 있다. 퇴소생의 군입대를 의무로 하여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과 봉사하는 마음도 배우게 하며 사회에서 올바르게 자립하는 방법을 익히고 자립에 필요한 정착금도 받게 하는 제도는 현실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남자 보육원생에게 희망을 품고 살아갈 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디 정책 입안자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보육원 퇴소생들의 군입대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