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받은 자들, 선택받지 못한 자들

선택받은 자들, 선택받지 못한 자들

나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고 선택을 받을 수도 있다. 인생은 수없는 선택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친구를 선택하고, 좋아하는 취미를 선택하고, 배우자를 선택하고,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할 수 있지만 한 가지 선택할 수 없는 것은 부모를 선택하는 것이다. 만약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누구나 부잣집에서 태어나 원하는 바를 맘껏 누리며 당당하게 살아가려 할 것이다.


한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곡이 인기를 끌었다. 희망 없는 사람이나 위로받고자 하는 이들에게 정체성을 회복하여 세상을 살아갈 힘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내가 선택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로부터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주어지는 축복과 같은 것이다. 연인 관계가 누군가의 일방적인 짝사랑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듯이, 사랑받다는 것을 알게 되어 상대방이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선택받은 사람만이 갖게 되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보육원에 입소한 아이들은 선택을 받았을까? 그렇다면 누구의 선택을 받았을까? 생부모의 선택으로 보육원에 입소한 아이들은 복지감독기관의 배정에 따라 작은 보육원, 큰 보육원으로 가거나 직업상 아동들을 관리하는 보육원으로 입소한다. 그러한 보육환경에 놓는 것은 누구의 선택인가? 부모의 결정이라는 것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특별하다’라는 말은 긍정적인 수도 있고 부정적인 수도 있지만, 특별한 선택을 받은 아이들은 보육원에 입소하여 특별한 환경에서 특별한 지도를 받는다. 무슨 잘못이 있어서 특별한 선택을 받은 양 그들은 자신의 욕구를 채울 수도 없고 사회적인 인정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세상과 떨어진 생활을 한다. 우주의 블랙홀처럼 아이들은 성장하면 할수록 끝없는 구멍으로 빨려들어 간다.


특별하게 선택받아 보육원에 입소한 아이들은 그들의 삶을 보편적인 것으로 무감각적으로 받아들인다. 사랑을 온전히 받지 못하고 애착형성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불완전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것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인다. 이러한 태도는 단체생활에서 서로를 향한 불신과 부정적인 자아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인생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과연 특별한 선택을 즉 특별한 잘못된 선택을 받은 아이들이 호소하고 보상받아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고아 중 선택받은 소수의 인원만이 입양을 간다. 그 역시 외모가 준수하고 눈빛이 초롱하며 소통이 잘되는 아이들이 독차지한다. 보육원장의 추천으로 선택된 아이는 또 다시 새로운 환경에 부딪히며 살아가게 된다. 그들의 인생은 여러 번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며 만들어진다.

다시 보육원 입소 전으로 돌아가 보자. 친부모는 아이를 입소시키기 전에 고민을 할 것이다. 그냥 버릴지, 아동전담기관에 맡길지 등 많은 고민 끝에 하나를 선택할 것이다. 가장 불편한 것은 아동학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가족과 생이별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는 잦은 가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아동이 직접 부모와 떨어져 살기를 요구하며 자기 스스로 보육원에 들어가기도 한다. 이처럼 많은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그들의 삶은 천차만별이다.


그렇다면 타의에 의해 결정된 삶이 행복할까? 구타하며 방임을 일삼는 가정에서 보육원으로 이동한 아동은 나름 며칠 동안은 행복할 수 있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보육원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소한 갓난아기들은 아무런 것도 알지 못한 채 본능에 이끌려 살아간다. 대부분의 아동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 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 버린 채 방황하며 살아간다. 즉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찾지 못한 채 위기 속에서 살아간다.


따라서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신의 존재를 형성에 나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누군가에게서 인정받고 사랑받고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살아가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보육원 안에서도 선택의 연장선이다. 한 가정에 10명 정도의 아동들도 함께 생활하다 보니 보육사님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사랑을 받는 아이들이 있다. 아동마다 성향이 다 다르니 보육사에게서 애정을 잘 받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항상 말썽을 부려서 관심 밖에 있는 아이들도 있기다. 부모에게서 버려지고 보육사와의 관계도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아이들은 자기만의 미지의 세계로 빠져간다. 애착 형성도 제대로 하지 못해 자책하고 스스로 비난하는 가운데 문제행동을 만들어 간다. 보육사의 눈에 들어온, 즉 선택받은 아이들은 특별한 관심을 받으며 보육사들의 희망의 아이콘이 되어 특별한 관리를 받게 된다. 그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의 눈치를 받지만 누군가에서 잘 보이기 위해 평소 갈고닦은 온갖 아부를 동원하여 보육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노력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는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쟁취하지 못한다는 냉혹한 사회의 법칙이 어린아이들에게 적용되는 모습이다. 이 얼마나 비참한 상황인가?

가끔 형들에게도 선택을 받은 아이는 온갖 괴롭힘에서 벗어난다. 생김새가 온화해 보이고 성품 자체가 선천적으로 조용한 아이들은 형들의 선택을 받아 다소 편안한 생활을 하게 된다. 즉 선택이 그들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은 성장하면서 더 크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시설에서 선택받은, 즉 성실하고 착해 보이는 아이들은 시설에서 고등학교를 결정할 때 그들의 의사를 잘 존중해 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선택받지 못하는, 즉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의사는 크게 존중해 주지 않는다. 그들 역시 존중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아 보육사와의 관계가 악화하는 것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평소 한 가정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평범한 단체생활을 운영해야 하는 보육사와의 마찰은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아이들은 보육사와 전쟁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보육사들에게서 인정을 받기는 보육사가 친부모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 친부모의 무한한 사랑과 관심만이 아동을 온전케 할 수 있다.


선택을 받은 아동들은 대학 등록금이며 여타 다른 생활에서도 보육원으로부터 큰 어려움 없이 도움을 받는다. 내가 원장이라도 내 맘에 들고 평소에 신뢰가 있고 미래가 밝다고 생각되는 아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다. 보육원의 모든 아이가 퇴소 후 자립을 잘해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서 정착하면 좋겠지만 그게 그리 쉽겠는가? 모두 다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면 소수의 인원만이라도 온전히 잘 양육하는 것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현재 삶을 인정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모두에게 인정받는 아동은 대학에 가서도 장학금을 우선적으로 추천받는다. 성실하지 못한 아동을 괜히 추천했다가 망신을 당할 바에야 검증된 아동을 추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 역시 위의 선택받은 자로서 대학생 때 여러 단체의 추천을 받아 등록금을 지원받았다. 나의 보육원 생활태도는 내가 쓴 『나는 행복한 고아입니다』에서 밝혔듯이 감사하는 마음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사는 것이다. 가출을 한 번도 하지 않고 학교 성적도 우수해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특별한 관심을 쉽게 얻은 것은 아니다. 흔히 얘기하듯 피땀으로 얻어낸 것이다. 어찌 나라고 힘들지 않았겠는가? 선배들처럼은 절대 되지 않겠다는 확고한 다짐과 동생들에게 모범이 되고 싶다는 신념이 나를 만든 것이다. 왜 보육원에 살면서 보육사를 욕하지 않았겠는가? 보육사가 동생들을 지나치게 혼을 내거나 부당하게 대우하고 단체생활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회초리를 들 때는 보육사와 심하게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보육사와 마찰을 하게 되면 불리한 사람은 나라는 사실을 알기에 다른 어떤 선한 행동을 통해 보육사의 섭섭함을 해소하고자 노력하였다.


선택받은 아동들은 특기를 계발하는 데서도 특혜를 받았다. 여러 학원을 우선적으로 다녔고 그들만의 특별한 관리로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 이것은 불공정하다기보다는 세상 그 어느 조직에서나 그 조직에 적합한 자들이 대우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그들은 후원자들의 관심도 독차지한다. 후원자나 자원봉사자들이 방문했을 때 이른바 보육원 모습을 대표하는 모델이 되는 것이다. 시설에서 인정받아야 불공평하게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이다. 내가 후원자라도 예쁘고 착한 아이들을 후원할 것 같고, 그래야 보람될 것 같다. 후원아동을 결정하는 건 그들의 온전한 선택이지만 어떻게 보면 불공정한 부분이 있다.

집을 이동할 때도 선택을 받게 된다. 보육원 안에는 남자 집, 여자 집이 있는데 남자 집 중에서도 초등학교 집이 있고 여러 중·고등학교 집이 있다. 어느 집으로 선택되어 가느냐에 따라 아동의 생활의 질이 달라진다. 고집이 센 형들이 있는 집, 심한 장난을 좋아하는 집으로 선택된 아동들은 차별 대우를 겪으며 살게 된다. 나는 그곳에 사는 동안 여섯 번 이동했는데 그때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희망 없는 선택으로 인해 너무나 힘든 생활을 하였다. 반면 운 좋게도 나이가 많은 누나들이 있는 집으로 이동한 친구들은 그야말로 땡잡은 것으로 누나들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하게 생활을 하였다.

어찌되었든 간에 우리는 선택을 받아 보육원에 입소하였다. 입소한 후에도 항상 선택이라는 벽에서 살아왔다. 무거운 짐 같은 그 선택은 우리의 인생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바꾸어 나갈 수 있을까?


인정할 수 없는 선택과 잘못된 선택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그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노력이다.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 강요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따라서 자기가 선택한 것을 책임을 지고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미성년자들은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선택을 하기 전에 신중하게 고민한다면 누구나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불가항력적인 선택이 우리 앞에 놓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는 인생은 그다음에 있을 선택의 기로에서 역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한 가능성이 매우 크다. 어쩔 수 없이 선택되어 보육원에 들어왔다면 그 상황에서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받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자신의 정체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보육원의 자랑이 되고자, 보육사들의 기쁨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와 마찬가지로 시설 관계자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행동은 보육사들이 보람을 얻고 좀 더 그 직업에서 명예를 얻을 기회가 된다. 보육사에게 인정받고 보육원의 자랑이 되려는 노력은 너무나 터무니없는 모습일 수 있지만 가장 현실적이며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어쨌든 보육원에 입소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으나 앞으로라도 선택을 받는 인생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시설생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keyword
이전 11화이룰 수 없는 군필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