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좋아는 나
친구에게 내가 사는 곳을 공개하는 것
# 친구 없이는 못 사는 첫째 아이
첫째 딸아이는 친구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외향적인 성격이라 그런지 아이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고, 늘 주변엔 친구들이 북적이는 편입니다. 참 다행이고 감사한 점이랍니다. 사실 저도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죽고 못 살 정도로 친하게 지내며 놀러 다니는 걸 좋아했습니다. 저를 닮은 구석이 있는 것이겠죠. 하지만 저는 제가 사는 보육원에 친구들을 한 번도 데려간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딸아이가 친구들을 집에 자주 데려오는 걸 보면 뿌듯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도 듭니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행복하고 즐거운 아이로 자라나고 있으니까요. 아이의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무엇을 하고 노는지 참으로 궁금합니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로 까르르르 웃음보가 터지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속닥속닥 비밀 얘기라도 나누는 지 표정만 보아도 신나 보입니다.
어린 시절 가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친구 부모님들이 간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말을 걸어주기도 한 기억이 납니다. 그때 기억을 떠올려보면 우리 집에 오는 아이 친구들은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다른 집에 방문한다는 것은 사실 흥미진진한 이벤트 일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어떤 분인지, 어떻게 집을 꾸미고 사는지, 몇 식구가 사는지, 친구 집에는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심지어 어떤 이불을 덮고 자는지 알게 되니까요. 무엇보다도 친구 집에 가서 친구의 부모님들을 만나면 부끄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친구에게 어떤 말투로 이야기 하는지, 어떻게 대하는지, 무슨 음식을 차려주는지 궁금할 것 같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그리고는 친구 집의 분위기와 나의 상황을 비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단순한, 눈에 보이는 것들로 비교를 하겠지만 그런 비교를 통해 아이들은 스스로의 상황에 대해 인식하기도 하고, ‘사는 모습은 정말 제각기 다르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친구와 보내는 아주 특별한 시간들
친구를 집에 데려와 함께 시간을 보내보면 전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여럿이 함께 어울려 뛰어놀 때와는 달리 자신의 공간에서 좀 더 편하게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말 못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고, 평소 생활하면서 느꼈던 마음의 이야기를 좀더 쉽게 나눌 수 있습니다. 집이라는 편안한 공간에서 나누는 솔직한 대화를 통해 자신들만의 공유거리, 아이들만의 세계가 만들어 지는 것 같습니다.
저도 어릴 적에 친구들 집에 놀러 갔던 기억이 더러 있습니다. 초대를 받아 방문하기도 했고, 제가 먼저 청해서 친구를 따라 집에 놀러간 적도 있습니다. 어린 마음이어서 그랬는지 저는 친구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공간에서 지내는지 참 궁금해 하는 아이였습니다. 집에 방은 몇 개인지, 어떤 책상에서 숙제를 하는지, 부엌은 어떻게 생겼는지, 자전거는 몇 대가 있는지 등등이요. 그들에게는 참으로 사소하고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보육원에서 사는 저에게는 모든 것들은 나와 다른, 특별해 보이는 것들이었습니다.
자기만 덮는 이불이 있고, 자기만 쓰는 옷장을 가졌다는 걸 보고 참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기억은, 집의 초인종을 누르자마자 친구의 엄마가 반갑게 친구를 맞이해 주던 장면입니다. 드라마에서만, 영화에서만 보던 그 평범한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니 어린 마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부러운 마음이었겠지요.
당연하지만 친구들은 자기 엄마를 참 닮았습니다. 어쩌다 부모님 두 분을 다 만날 때면 얼굴 구석구석 닮은 구석이 있어 참으로 신기해했습니다. 나와 닮은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다니,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찡했습니다.
친구 집을 방문하는 일은 지루하기만한 보육원의 일상에 커다란 해방구였습니다. 적어도 친구 집에 놀러가는 시간만큼은 내가 보육원에서 사는 아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게해 준 마법같은 시간 이었습니다. 늘 일정 시간에 밥을 먹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 끼니를 기다려야만 하는 보육원의 생활과 달리 친구 집에서는 먹고 싶을 때, 자고 싶을 때, 텔레비전을 보고 싶을 떄 마음껏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 조금 우을했던 보육원의 생활
보육원에서 나만의 개인 공간은 결코 존재할 수 없기에 나는 차마 친구들을 보육원에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보육사님들도 외부 친구들을 보육원에 데리고 오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환경이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기에 괜히 보육원 생활이 비교가 되어 초라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보육원 근처에 살던 친구들은 놀이터가 있는 보육원으로 놀러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외부에서 친구들이 보육원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것을 보면 저는 그들을 피해 조용히 보육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내가 사는 곳, 우리 집 놀이터인데도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움츠러들었습니다.
제가 보육원에 사는 걸 아는 몇몇 친구들은 보육원을 먼저 찾아와 같이 놀자고 청하기도 하였습니다. 제 특수한(?) 상황을 알면서도 먼저 놀자고 손을 내밀어 주는 아이들이었지요. 나는 그런 아이들을 내가 사는 곳에 불러와 함께 놀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평범한 아이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 친구를 만드는 법, 세상으로 나아가는 법
어떻게 보면 저와 저희 아이들의 삶은 너무도 다릅니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구나, 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저는 삶이 불공평하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사는 모습이나 삶의 방식은 모두 같을 수 없으며 그 ‘다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다른 상황과 삶의 방식에 대해서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함께 공존하면서 어울리고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모두들 똑같이 부모님이 계신 가정에서 자라고, 친구끼리 집을 오가며 어울리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다른 환경이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일반 가정에서 자라는 친구를 사귈 자격이 없는 걸까요. 또 이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불평을 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저는 한번쯤 용기를 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내가 비록 너를 초대할 상황은 되지 않지만 나는 너희 집에 가보고 싶다, 대신 나는 공부를 가르쳐 줄 수 있다‘ 라든지, 너희 집에서 내가 준비한 맛있는 것을 함께 나누어 먹자, 고 말을 꺼내든지 말이지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친구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처음에는 조금 용기가 필요하지만 이런 계기로 인해 진짜 친구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중 고등학교 시절에 저는 보육원 바깥에 사는 친구들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서 먼저 다가갔으니까요. 제 처지를 부끄럽게 여기기보다는 그저 상황을 자연스럽게 오픈하면서 친구들에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렇게 함께 축구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우정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보육원을 나와서도 사회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평생을 갈 좋은 친구들을 얻은 것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