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도 사라지지 않는 외로움

보육원의 명절

명절에도 사라지지 않는 외로움


올해도 어김없이 명절이 찾아왔다. 해가 갈수록 조용하게 느껴지는 명절이지만 나에게 조용한 명절은 그다지 낯설지가 않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지만 명절을 기다리며 친지들을 보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물론 처가 식구들을 만나는 것은 언제나 설레지만 명절이라고 해서 딱히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보육원에서 자란 나는 명절을 명절답게 보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보육원도 바빠진다. 보육원 선생님들은 명절을 앞둔 2주 전부터 그야말로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후원자님들의 정성 어린 선물을 받고 의례적인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는 찾아오신 분들에게 연신 감사의 인사를 한다. 후원자님들의 표정에도 공통점이 있다. 자연스러운 듯 부자연스러운 듯 인사를 한 다음 못내 아쉬움 마음을 비추며 돌아간다. 어른들의 인사이지만 어린 나로써는 왜 저렇게 공손하게 서로를 존대하면서 인사하는지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떤 후원자님에게도 밝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원장님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다 우리를 위해서, 후원자 관리를 위해서 한 일이라곤 하지만 나라면 절대 할 수 없는 모습에 원장님이 대단해 보였다.


가끔은 후원자님들과 억지 사진을 찍어야 한다. 선생님들만 사진을 찍으면 인원수가 얼마 되질 않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아이가 많아야 후원자님들은 많은 아이를 도왔다는 생각에 뿌듯함을 느낄 테고, 우리의 불쌍한 모습이 사진에 들어가야 앞으로 후원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다는 보육원 나름의 전략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사진을 강제로 찍어야 한다는 건 꽤 부담이 되었고, 간혹 잘 모르는 후원자님이 내 어깨에 손을 얹거나 강제로 안아 들 때는 온갖 짜증이 났다. 하지만 보육사님들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 사진 촬영을 할 때는 될 수 있으면 후원자님과 친한 모습을 보여야 했기에 우리는 당연한 듯 길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저 멀리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부르기도 했는데, 한창 놀이에 빠져 있었던 아이들로서는 사진 찍기가 얼마나 싫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2주간 온갖 일들이 일어나고 개인, 회사, 여러 자선단체를 통해 보육원에 들어온 물건은 창고에 차곡차곡 쌓인다. 우리는 가장 좋은 선물이 무엇인지 눈여겨보며 언제쯤 그 선물을 받게 될지 기다렸다. 명절 당일이 되었다. 이상하다. 특별한 선물이 없다. 선생님들이 선물을 다 가져간 것인가? 그 선물은 누구의 것인가? 후원자님이 우리에게 왜 바로 주지 않는지 원망스러울 뿐이다. 기대했던 마음은 실망과 원망, 서글픔으로 가득찬다. 그래서인지 명절 분위기를 더 느낄 수가 없다.


나는 천애 고아이다. 천애 고아란 부모님의 흔적을 전혀 모르는 아이라는 의미이다. ‘세상에!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다니!’라고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사실이다. 부모님을 찾으려고 노력하고는 있지만 주민등록번호가 정확하지 않아 여러모로 쉽지 많다. 천애 고아이기에 나는 명절이라도 친지 집에 가지 못했다. 가끔 나를 후원해 주신 분의 집에 방문하긴 했지만 명절은 거의 시설에서 지냈다. 명절이 되면 친부모가 아닌 삼촌이나 고모, 할머니 등과 연결된 아이 대부분은 시설을 벗어나 가족의 품으로 갔다. 그 가족들과 며칠 밤을 보낸 후 용돈을 갖고 시설로 돌아왔다. 그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가족 집을 방문했을 때 흔쾌히 반겨주는 분도 있지만 많은 아이는 큰 보람도 없이 돌아오곤 했다. 그래도 나는 어딜 다녀온 아이들을 보면서 마냥 부러워했다. 용돈이라도 받아온 아이들은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며 한 달가량 의기양양하게 지냈다. (그러고 보면 보육원생 간에도 엄연한 차이가 존재했다.) 용돈이 있는 친구에게 붙어서 간식이라도 얻어먹으려고 온갖 가증스러운 행동을 한다. 그것이 보육원이 삶이다. 가끔은 받아온 용돈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 놓지만 절대로 돈은 오래가지 않는다. 같은 집에 사는 선후배들은 무슨 동물처럼 온갖 레이더를 동원하여 친구들이 없을 때 훔쳐 가곤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친구는 한숨만 내쉬며 속만 태울 뿐 특별히 찾질 않는다. 어차피 누가 가져가 이미 다 써 버렸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어떤 외로움인가? 혼자 여행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이 대부분일 것이다. 고아가 느끼는 외로움과는 너무 다르다. 고아에게 외로움은 비참하게 다가온 감당할 수 없는 짐 같은 것이다. 막다른 낭떠러지에 있는 듯한 기분, 세상에서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공허함, 세상의 모든 고민을 혼자 짊어진 듯한 무게감 등 고아라서 느끼게 되는 외로움은 아픈 상처를 더 곪게 하는 질병과도 같다.

보육원생에게 외로움이란 무엇일까?

간혹 고아가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아이가 외롭고 처량하게 연못에 돌을 던지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참으로 피상적이다. 한 아이가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매우 절망적인 일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고 활동량이 많아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데, 어린아이가 무념무상의 상태가 된다는 것은 매우 드물고 너무나 불쌍하고 처량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보육원생이 느끼는 외로움이란 일반적인 외로운 감정과는 차이가 있다. 온종일 친구들과 뛰어놀고 많은 후원자님을 만나는데도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보육원과 보육원 밖, 즉 평범한 가정과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외로움을 따로 떼어 놓고 보육원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외로움은 그리움이 축적되어 생겨난다. 부모의 선택으로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항상 가슴 한구석에 지니고 산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부모에 대한 그리움이 좌절로 변하고 그 좌절은 분노로 이어지지만 결국은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면서 외로움의 형상을 갖게 된다. 필자는 친동생이 있었지만 항상 외로움을 느꼈다. 부모가 없는 상황에서 즉 족보가 사라진 상황에서 친동생과의 관계는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 자신이 살아가는 데 이겨내야 할 외로움이 너무나 컸기에 나는 그 외로움을 벗어 버리고자 노력하였다.


외로움은 정말 고통스러운 감정이다. 때론 외로움을 통해 나 자신을 냉정하게 살펴보고 내가 처한 상황을 이성적으로 바라보지만, 외로움이라는 것은 매우 잔인하기까지 하다. 보육원 후배 중 한 명은 외로움으로 인해 작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외로움의 정도가 가벼우면 누구나 이겨낼 수가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엄청나게 크게 되면 쉽게 이겨내기가 어렵다. 또한 사람마다 외로움을 이겨내는 정도가 다른 만큼, 보육원이라는 같은 환경에서 나름 평범하게 생활하는 아이도 있지만 매우 작은 외로움에도 스스로 자책하며 절망하는 아이도 많다.


아이들이 외로움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말을 안 하는 아이, 외로움을 숨기려고 가식적으로 웃는 아이, 짜증을 내는 아이, 사람을 피하는 아이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보육원에서 함께 사는 친구로서, 형으로서 그들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의 외로움을 극복하기가 힘들더라도 가끔은 그들과 함께 웃으면서 외로움을 별일 아닌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보육원 아이들은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보육원 친구들과 철없이 무절제하게 논다. 공부를 하지 않고 노래방이나 PC방에 간다. 때로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허함을 채우려고 한다. 학생 때 어느 정도야 놀 수는 있지만, 노는 시간을 제대로 정하지 않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면 어느새 퇴소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온다. 그재서야 퇴소 후의 준비를 하려다 보면 이미 늦었음을 깨닫고 뼈저리게 후회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러한 외로움을 잘 이겨내야 퇴소 후 사회에서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고, 의지를 갖고 자립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필자는 대학에 가서 외로움이 얼마나 무서운 지 깨달았다. 항상 보육원에서 단체생활을 하다가 혼자 자취방에 살다 보니 이른바 ‘멘붕’을 느끼게 되었다. 공황장애 같은 상황이어서 사람을 만나기가 겁나고 만사가 귀찮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에는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무엇이 그리도 힘들었을까 돌이켜보면 그동안 시끌벅적한 곳에서 생활한 탓이었다. 결혼을 한 지금도 가끔 혼자 있으면 옛날 보육원 생활이 생각난다. ‘나는 누굴까? 나는 혼자였어.’라는 생각에 젖어 외로움과 고독함을 느끼곤 한다. 퇴소한 지 오래된 지금은 외로움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 정도로 외로움과 친숙해졌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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