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린 사람을 용서하는 게 가능한가요? 정말 가능할

나를 살린 용서

나를 버린 사람을 용서하는 게 가능한가요? 정말 가능할까요?


2021년 8월 EBS의 <파란만장>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하여 고민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어디에도 터놓지 못하고 냉가슴만 앓는 출연자의 고민을 멘토들이 듣고 치유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돈은 잃은 사람, 건강을 잃은 사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 등 삶의 터전이 흔들릴 정도로 인생의 큰 시련을 겪거나 갑자기 닥친 불행으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누구나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고, 자신만의 가슴 아픈 사연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나 역시 뜻하지 않게 보육원에서 자라서 평범한 인생을 살지 못하였다.


출연 섭외를 받았을 때 주제를 듣고서는 사실 잠시 망설였다. 프로그램의 주제가 ‘나를 살린 용서’였기 때문이다. ‘내가 부모를 용서했는가?’ 나는 평소 부모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한국고아사랑협회에서 활동하면서 후배들에게도 우리를 버린 부모를 원망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해치고 자신의 인격을 망치는 것이라고 일러주곤 했다. 그리고 우리가 더 큰 사람이 되려면 넓은 마음으로 부모를 먼저 이해하자고 여러 번 이야기하였다. 그렇기에 나는 부모를 이해는 하지만 용서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더욱이 그냥 용서가 아니라 ‘나를 살린 용서’라니! 부모에 대한 용서가 결국 나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다는 사연을 방송에서 소개하라고 하니 다소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를 이해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그분들을 용서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기에 방송 출연을 결심하였다. 용서란,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주는 것을 말한다. 내가 과연 부모를 용서했는가를 따져 보려니, 먼저 부모가 나에게 어떤 잘못을 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분들이 나를 버린 것이 잘못인가? 나를 보육원에 맡기고 찾으러 안 온 것이 잘못인가? 아니면 근원적으로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이 잘못인가?’ 생각이 무척 복합해졌다.


어찌되었든 부모에 대한 용서가 나를 살리고 내가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것을 말해야 하는 방송이기에 나는 부모에 대한 용서라는 관점에서 방송 준비를 하였다. 녹화 당일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보육원 입소와 생활 그리고 교사가 되기 위한 과정 등에 대해 말하는 것이 무척 부담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별 볼 것 없는 내 인생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자는 마지막으로 아직 만나지 못한 부모에게 한마디하라고 했다. 그때, 준비해 간 멘트와는 다른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어떻게 자식이 부모를 용서한다는 표현을 쓸 수 있지?’라는 생각이 떠올라서 스스로도 의아했다. 그래서 ‘나는 부모를 용서할 수 없다. 자식은 부모를 용서해 주고 말고 하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부모의 심정을 이해하고 그분들의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사회자는 다소 어리둥절해하며 나의 말에 너무나 공감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많은 보호아동이 자신을 버린 부모를 원망한다. 부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신의 인생을 아무렇게나 살며 시간을 낭비하고 자신을 볼잘것없는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모에 대해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분노를 어찌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옭아매는 족쇄가 생긴다면 불행이라는 2차 피해를 스스로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버린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사실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너를 버린 부모를 용서해야 한다’고 누구도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래서 내 생각을 후배들에게 말하는 것 역시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방송에서 말했듯이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더 행복하게 살기 원한다면 자식으로서 부모를 용서하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자신도 더 나은 부모가 될 수 있을 테니까.

누군가에게 용서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기보다 그 누구에게도 아픔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보호아동들이 자신에게 아픔을 준 이들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그 아픔을 통해 자신이 보다 성숙해져야겠다는 생각을 앞세울 수 있다면 그들 역시 이 사회에서 지극히 평범한 존재로서 잘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부디 보호아동들이 부모에 대해 원망하고 분노하기보다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노력하기를, 부모를 대신해 자신을 돌봐준 이들의 관심을 기억하며 보통의 청춘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더욱 굳혀 가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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