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의 아들이다
드라마 <D.P.>가 주는 교훈
나는 ‘신이 아들’이다. ‘신의 아들’이란 흔히 ‘군 면제 받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아동양육시설에서 5년간 생활한 사람은 군에 가지 않아도 된다. 희망하면 갈 수는 있지만 장교로는 갈 수가 없다.
나의 저서 《나는 행복한 고아입니다》에서 밝혔듯이 군인이 꿈이 나는 보호종료아동이라는 신분 때문에 ROTC에 불합격하였다. 보육원 출신이라서 겪는 여러 불편함이 있는데 진로를 선택할 때도 큰 차별을 받았다. 20대 초반에 남자 친구들이 다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주변에서 “너는 군대에 언제 가니?”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그러면 나중에 갈 거라고 얼버무리며 눈치를 봤다. 군인을 꿈꾸었는데 군 면제라는 것을 밝힐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너무나 짜증이 났다.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내 자존심을 심하게 무너뜨렸다. 어쩔 수 없이 친한 친구의 해병대 기수를 우연히 알게 되어 그 이후로 누가 물어보면 그 친구와 같이 해병대 739기라고 거짓말하곤 했다. 어찌되었든 군 문제는 나에게 매우 불편하고 잊고 싶은 것이다.
2021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D.P.>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D.P.’는 군무이탈(탈영병) 체포조의 영문 Deserter Pursuit의 약자이다. 왜 탈영병이 생겨나는가. 드라마는 탈영병을 통해 군대 내 무차별적인 가혹 행위와 강압적인 상명하복 문화 등 각종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전쟁 영화는 좋아하지만 군 생활을 소재로 한 드라마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성인이 된 후 여러 모임에서 군 전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면 나는 언제나 소외되었다. 주변인으로서 어떤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나에게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를 묻진 않을까 하고 괜히 조바심을 냈다. 여하튼 군대 이야기를 하는 자리는 나에게 언제나 괴로운 자리였다. 그래서 <D.P.>도 시청하지 않았다. 아니 보고 싶지가 않았다.
주변의 열렬한 시청자들은 왜 그리 <D.P.>를 좋아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군에서 자행되는 잘못된 관행의 개선을 바라는 마음을 대변해 줘서일까. 아니면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군에서의 구타와 가혹 행위를 군대를 다녀온 사람과 그 가족이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일까. 아직도 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 때문에 드라마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 어느 탈영병의 항변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탈영병은 “최악 속에서 택한 최선”이라고는 항변하였다. 나에게는 결코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보육원에서도 탈영과 유사한 가출이 수없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보육원에 5세에 입소하여 가출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보육원에서 가출은 빈번히 이루어진다. 보육원의 한 동기는 10회 이상 가출하기도 했다. 나는 가출을 한 번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다. 보육원 친구들과 내 아내에게도, 그 힘든 보육원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가출하지 않을 만큼 나는 끈기가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자랑처럼 말하곤 하였다. 가출하면 매번 잡혀 와 끔찍할 정도로 맞는 그들을 보며 나름대로 나는 소신이 있다고 생각하며 가출한 친구들과 달리 나는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 또한 탈영병처럼 최악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가출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내가 참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가출하지 않은 것은 자랑이 될 수 없고, 그 아이들이 가출을 감행한 것은 그 당시 참혹한 보육원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자 한 의지의 표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또다시 잡혀 올 것을 알면서도 가출하기까지 그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가혹했는지를 뒤늦게 알게 되었다.
보육원은 단체생활이라 수많은 가혹 행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 역시 생활지도원과 형들로부터 끔찍한 구타와 폭언을 당한 적이 있다. 생활지도원은 아동 여러 명을 관리하는데 폭언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고 형들 역시 자신이 맞은 만큼 후배들을 때리며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동생들을 노리개로 여기고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을 행사하였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으로 가출한 그들은 과연 잘 지내고 있을까. 가출을 통해 얼마나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켰고 자신의 인생을 올바르게 설계했을까. 보편적이진 않지만 중학교를 겨우 졸업한 그들은 냉혹한 사회에 나와 바닥에서 지금까지 온갖 굳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어쩔 수 없이 가출한 그들의 삶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보육원은 원래 힘든 곳이며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동은 스스로 어려움을 이겨내야 된다며 보육원 폭력을 묵인한다면 그것이 과연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일지 생각해 봐야 한다. 청년들도 군대 내 가혹 행위를 이기지 못하고 탈영하는데 보육원에서 자행되는 교묘한 폭력에서 아동들이 겪는 아픔을 그동안 우리가 너무 방관한 것은 아닌지 이 사회에 물어보고 싶다.
혹자는 군대와 보육원을 왜 비교하느냐고 할 것이다. 보육원은 국가가 아동보호를 위해 운영하는 기관으로 아동보호 관점에서 꼭 필요한 곳이지만 단체생활로 인해 어릴 때부터 온전한 인간성을 가질 수 없는 곳이다. 사생활 보호와 개인의 존엄이 실현되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은 정해진 규정과 프로그램에 맹목적으로 따라야 한다. 온전한 사랑을 받아야 하는 시기에 안정감을 유지하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에 순응해야 하는 것이 군대와 다를 바가 없다. 정해진 시간에 먹고 자는 것과 암암리 자행되는 폭력이 공통된 다는 점에서 탈영병과 가출 아동을 비교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군대를 다녀온 어느 시청자는 <D.P.>를 본 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느꼈다고 한다. 보육원을 퇴소한 지 20년이 지난 나도 드라마에서 보육원 내용을 접하거나 강연 시 보육원 이야기를 꺼내다 보면 그 당시의 감정이 되살아나곤 한다. 군대에서 청년들이 겪는 경험과 아이들이 보육원에 겪는 외로움과 절박함이 어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D.P.>를 보지 않을 것이다. 중학교 시절 보육원에서 20명의 형과 살면서 집 안 청소, 도시락 설거지, 빨래 등을 하면서 겪는 ‘남자의 세계’를 더는 떠올리고 싶지 않다. 군 면제인 내가 군대 드라마를 보는 것이 간접 경험을 하는 좋은 기회일 수 있지만 만일 시청하다면 내 성격상 군에 가지 못한 나의 서러움과 단체생활에 겪은 야만적인 폭행의 경험이 다시 떠오르게 될 것이다. 단체생활인 보육원의 생활이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따돌림과 구타가 있다.
드라마 <D.P.>의 방영을 계기로, 단체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문제에 대해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퍼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보육원에서 행해지는 부조리한 일들도 근절되도록 모두가 함께 지속적으로 노력했으면 한다. 강압적인 보육 지도로 인해 우리의 아이들이 보육원에서 불합리하게 차별받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