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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정 보호해야 할 존재들

우리가 진정 보호해야 할 존재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학교나 유치원에서는 ‘자연을 보호합시다’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내가 살았던 보육원 옆의 산꼭대기에도 ‘자연보호’라는 간판이 크게 걸려있었다.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자연보호라는 문구를 보며 자연보호가 중요하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그 산에 올라가 토끼도 잡고 칡도 캐서 먹고 대나무를 잘라 칼싸움을 하기도 했다. 자연이 주는 포근함과 편안함을 어릴 적부터 누려온 것이다. 자연 속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나면 한없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계절이 변하면서 자연의 모습도 덩달아 변해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눈 쌓인 겨울 산에 올라 나뭇가지에 차곡차곡 쌓인 눈을 털어내며 자연의 위대함 앞에 한없이 작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다. 자연은 어릴 때부터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스승이었다.      


‘자연을 사랑합시다’라는 메시지를 건 환경보호 광고는 21세기에서 가장 큰 주제 중의 하나이다. 지구의 급격한 온도 상승으로 인해 기후는 변화하고 있고 인류는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바다는 죽어가고 있다. 신께서 주신 자연을 인간이 훼손하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수많은 동, 식물 생명체가 인간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인간과 자연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러한 생명체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우리는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제 보호라는 말이 붙는, 보호아동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보호아동이란 보호자가 없거나 보호자로부터 이탈된 아동이다. 보호자가 아동을 학대하는 등 아동을 양육하기에 부적당하거나 양육할 능력이 없는 경우의 보호자와 분리된 아동을 말한다. 보호자와 헤어졌기에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그동안 ‘보호’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상당한 거부함을 느꼈다. 부모 즉 아빠, 엄마가 아이의 보호자인데, 보호자가 없는 아동을 또다시 보호아동이라고 부르다니. 아동이라는 존재는 부족하고, 누군가를 반드시 의지해야만 하는 매우 연약한 존재로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보호아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보육원 아동들을 불쌍하고 외로운 아이들로 인식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보호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적대감이 들었다. 하지만 점차 생각은 변해갔다. 학교에서도 보호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기도 하고, 사회에서도 수많은 부모가 없는 이들을 돌보는 즉, 삼촌이나 할아버지와 사는 아동들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보호라는 말에 대한 거부감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보호라는 단어는 사실 굉장히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아동뿐만 아니라 성인이라도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보호를 받아야 한다. 또 세계문화유산보호, 세계문화재보호구역, 오존층 보호, 세계 보호무역, 동물 보호 등 수많은 분야와 단체에서 보호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그 말의 깊은 뜻과 가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다시 아동 이야기로 돌아와 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보호아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역사적 기념물이나 고고학 유적지와 같은 가치 있는 유형의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것처럼 보호아동을 국가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아동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아니면 탄자니아에 있는 초대형 화산인 응고롱고 분화구처럼 감탄하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보호아동을 바라봐야 할까. 어이없고 우스꽝스러운 생각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그만큼 보호아동은 숭고한 마음을 가지고 그들을 소중한 존재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보호아동이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는 존재라 생각하진 않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사실 고아들도 수백년전부터 이 땅에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자연이나 문화재처럼 말이다. 자연과 문화재 등을 보호아동과 비교하는 것이 매우 부적절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편리성과 무분별한 자원 개발로 인해 지구 온난화가 생겨나고 오존층이 파괴된 것처럼 보호아동을 온전히 보살피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아마도 수많은 인격 장애, 범법자, 사회 부적응자를 양성할 수 있는 것이다. 보호아동이 위험에 빠져서는 안된다. 보호아동을 온전히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수많은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1961년 지정된 아동복지법에 보호아동의 기간이 만 18세였던 것을 최근이 돼서야 만 24세까지 보호를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60년 만의 일이다. 그동안 열여덟 어른으로서 수많은 보호청년들이 사회에 내몰렸는다. 앞으로는 개인의 의사에 따라 더 오랜 기간 보호를 받을 수 있다니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보호 당사자들은 국가로부터, 단체로부터 보호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스스로가 사회에서 소중한 사람, 가치있는 존재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 자신도 보호아동들이 결핍이 있는, 도움이 필요한 아동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마땅히 존중하고 사랑해야 우리의 이웃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보호아동이 외롭지 않도록 그들의 존재를 소중히 생각하고 이 사회에서 공존하는 아이들로 여겨야 한다. 자연이 우리와 함께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호아동도 우리의 삶과 매우 연결되어 있다. 우리들의 무관심으로 보호아동들이 외면당하거나 그들의 삶이 위협받는 일이 없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호아동이 발생되지 않도록 가정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다. 성인들이 사소한 갈등으로 이혼하지 않고 미혼부모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책임있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고 지속적인 지원과 한부모에 대한 인식이 변화가 필요하다. 아동학대에 대한 사전예방을 철저히 하고 격리된 아동들의 심리적 치료 상담을 신속하게 하여 가정으로 복귀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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