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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아버지 뭐하시노

니 아버지 뭐하시노     


"니 아버지 뭐 하시노" 라는 말은 영화 속 갈등이 있는 장면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아니면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종종 하는 말이다. 학창시절에 네 아버지 뭐 하시노 그렇게 얘기할 때 선생님께 감히 "내 아버지 없습니다."라고 얘기하면 자칫하면 큰일난다.  

선생님들께 어떻게 아버지 없습니다. 그러면 진짜냐고 한 번 더 물어보시는 분보다도 한 대 맞은 적이 더 많았다. 아버지를 욕하지 마라. 세상에서 제일 나쁜 욕 중에 하나가 아버지를 욕하는 거 것이라며 매우 혼을 냈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물어볼 때마다 개인적으로 되게 좀 난처했다. 주로 아버지 뭐 하시느라고 물을 때는 학교에서 무엇을 잘못했을 때 그런 일이 생겨난다. 네 아버지 뭐 하시노 나는 이 말을 하는 자체가 어떤 사회적 문화 때문에 생겨났는지 잘 모르지만 유교문화의 우리나라에서 혈연관계를 중요시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말도 안 되는 말인 것 같다. 


아버지가 없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 묻는 자체가 저희 세대가 성장할 때 학교나 사회의 분위기가 매우 보수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와 싸운 적이 있다. 그러면 친구가 아버지에게 달려간다. 그러면 잠시 후 그 친구의 아버지가 나에게 와 묻는다. 다짜고짜 나는 아무 잘못이 없고 그 친구가 먼저 시비를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의 아버지는 니 아버지 뭐 하시노 너희 집에 가자 화를 내며 얘기를 한다. 그러면 나는 보육원에 산다라고 하면 보육원에 사는 애가 그렇군이라면 더 혼을 낸다. 일단 같은 편이 없기 때문에 더 서럽다. 나는 잘못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없어 더 혼난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까 네 아버지 뭐 하시노가 아니라 사실 따지고 보면 네 어머니 뭐 하시노 그런 말씀을 왜 안 하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럴까 한 번도 그렇게 고민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네 아버지 뭐 하시노 지금 우리 학교에서도 가정환경을 조사할 때 아버지의 직업란을 작성하지 못하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하시는지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너무나 저는 좋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네 아버지 뭐 하시노 그런 말들은 장황하게 계속 얘기를 하면 끝없이 얘기할 수 있지만 이쯤에서 마치겠다.      


고등학교 역사시간이었다. 역사선생님은 자주 학생들의 족보를 물어셨다. 본인이 매우 족보가 있는 무슨 가문의 몇 대손이라며 가문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선생님이었다. 표정도 항상 근엄하시고 뼈대있는 가문이라며 자랑을 자주 했다. 많은 친구들에게 묻고 어느날 나의 순서가 되었다. 너는 어디 "이" 씨니 라고 묻는데 상당히 난감했다. 그 당시에 어떤 사람도 저에게 족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족보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냥 이성남이다. 라고 했다. 이 씨이다. 라는 것에 대해서 저는 그렇게 족보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 적이 없었다. 무슨 이 씨 예를 들어 경주이씨, 전주이씨 이런 사람마다 족보가 있다는 것 자체를 몰랐다. 그런데 그런 무슨 이씨 냐니 너무나 난감했다. 


너무나 황당했다. 역사선생님이 나에게 물었을 때 잘 모른다고 하니 족보도 모르는 놈이라고 훈계를 엄청나게 했다. 사람의 됨됨이가 없다. 너는 빨리 가서 알아보고 다음 시간에는 꼭 다시 얘기해라 했고 그 이후로 나는 그 선생님을 피해 다녔다. 그 시간이 제일 싫었다.   

    

40대 초반에 안 사실이지만 나는 사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전주이씨 일가창립이다. 법원에서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잘 모르고 족보가 있었는데 족보가 없는 사람이라고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말한 매우 후회스러운 과거이다. 인간 됨됨이가 안 된다고 꾸중 들은 너무나 아픈 상처이다.      

 

친구들끼리 싸울 때에도 그런 얘기를 한 거 같다. 우리 아버지 뭐 한다. 우리 아버지 무슨 일 한다. 우리 집 좋은 집이다. 라며 자랑한다. 그리고 결혼을 해서도 경험하게 되었다. 아내는 조카가 매우 많다. 결혼을 하자마자 여덟 명의 조카가 생기게 된 것이다. 나는 내가 조카였던 적이 없어서 조카라는 말 자체를 잘 몰랐다. 그래서 고모부로서 어떻게 조카들에게 대해야 할지 너무 조심스럽고 궁금했다. 조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대해 줘야 하는지 어떻게 말을 해 줘야 하는지 저는 그냥 평범하게 그런 생각을 고민했던 것 같다. 남들이 고민하지 않는 그런 고민을 많이 했다. 상당히 많이 좀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제가 삼촌도 없이 그리고 이모, 고모, 숙모도 없었기 때문에 사실 한 번도 말(삼촌, 고모, 숙모)이 입에 달라붙지 않았다. 결혼하고 나서 지금은 숙모님, 삼촌이란 말이 익숙하지만, 고등학교 졸업하고 결혼하기 전까지는 숙모라는 말은 한 번도 제 인생을 살면서 해본 적이 없었다. 외조부, 외조모, 조부, 부모 이런 단어들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때 가족 관계 조사서 이런 것에 적지 못했다. 본가와 외가의 뜻도 잘 몰랐다.      


네 아버지 뭐 하시노라고 지금 저에게 물어보시는 분은 이제 없다. 천만다행이다. 그동안 잘 견딘 보상이다. 내가 아버지가 됐으니까 이제는 내가 다른 분들에게 이런 말을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족보를 몰라 혼나는 것도 불평등하고 부당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아버지의 직업과 가문으로 인해 사람을 평가하는 매우 큰 실수를 저지러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혐오와 차별이기도 한다. 하루빨리 니 아버지 뭐 하시노라는 말이 사라지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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