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아닌 엄마를 향해]
지난 2달 전의 일이었다. 여느 날처럼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 아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18년 동안이나 함께 살았음에도 처음 듣는 느낌의 말투였다. 아내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집에 들어오기 전에 아이들을 집에 둔 채로 주차장에서 따로 만나자고 했다. 그런 아내답지 않은 행동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걱정이 앞섰다.
주차장에서 만난 아내가 나에게 전한 말은, 모르는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이 여성은 나의 엄마의 존재에 대해 안다고 주장했다고 했다. 나는 5살에 보육원에 들어가 26살에 나온 이후, 지금까지도 엄마를 찾는 중이었다. 40년 만에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엄마의 소재를 알려준다는 연락을 받으니, 말 그대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여성은 나를 버린 곳과 나이, 그리고 나의 모습이 모친과 비슷하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엄마가 맞다고 단정 지었다. 일단 나를 당장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이런 상황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아 퉁명스럽게 나를 만나려거든 직접 오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일단 DNA일치 여부를 확인한 후 만나자고 하여 그러자고 했다. 그러나 한 3일이 지났을까. 나는 너무나 궁금한 마음에 먼저 전화를 걸어 당장 만나자고 말했다.
그녀를 만나보니, 나와 성이 다른 누님이었다. 설명인즉슨 그녀와 나는 같은 엄마를 가졌지만, 아버지는 다르다고 했다. 나의 엄마는 삶의 많은 시련과 굴곡을 겪었다고 했다. 여러 가지 연유로 그녀와 나는 성이 다르긴 하지만, 기분 탓인지 생김새는 놀랍게도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40년 만에 엄마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놀라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긴 세월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일이 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기분은 그 기쁨을 모르는 듯 했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찾아왔건만, 도대체 왜 이제야 나를 찾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나를 찾고 싶었다면, 내가 자라고 있는 보육원을 찾아오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가 나를 버리고 살아온 죄책감과 절망에 이끌려, 찾을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화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잡생각을 지우려 애를 썼다.
어쨌든, 누님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어떻게 나를 찾았는지 물어보니, 실종아동리스트를 검색하다 우연히 나를 발견했단다. 그 말이 사실인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것은 내 삶에서 가장 큰 선물이자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성이 다른 누님께 모친의 머리카락과 사용한 칫솔을 우편으로 받아 DNA 검사를 의뢰했다. 우체국에서 우편물을 보내며, 그 결과가 일치하기를 온 마음을 다해 바랐다. 그 후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1주일은 내 생애에서 가장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검사결과가 나오기로 한 예정된 1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답답한 마음에 나는 직접 검사기관에 연락했다. 그리고 며칠이 더 필요하다는 대답을 듣게 되었다. 더욱이, 그것은 나에게 재검사가 필요하다는 메시지였다. 처음으로 시도한 검사였기에 재검사는 왜 필요한 것인지 궁금했다. 그들은 염색체 이상이 발견되거나 결과가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만 재검사를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동안 이 여성이 당연히 내 엄마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렇다면 앞으로 그녀를 어떻게 부를지, 어떤 관계를 형성할지 머릿속으로 수없이 상상해보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결국 나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결과를 전달받게 되었다.
드라마에서는 주인공이 잃어버린 자식을 찾거나 어이없는 상황에서 친자를 확인하는 놀라운 장면을 종종 보았지만, 실제로 그와 같은 상황을 겪으니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일치하는 결과가 나온다면 뉴스에 제보하려 했고, 그 동안 엄마 없이 성장한 고통을 씻어내고자 했다. 그러나 이제는 마치 두 번이나 엄마를 잃은 듯한 감정이 들었다. 상상하지도 않았던 일이어서였을까. 눈물 한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비극적인 결말이 나오기 전 친한 친구들에게 말했을 때, 그들은 그 여성이 분명 내 친모가 될 것이라는 확신으로 함께 설레하며 내가 그동안 겪은 고난에 대해 위로하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들의 마음과 말이 떠오르자 내 마음은 더욱 쓰라렸다.
나와 그 어떤 관계도 없는 그들에게 결과가 불일치임을 알려주니 오히려 그쪽이 더 황당해했다. 사실 그들이 나에게 연락하기 전 1년 동안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잘살고 있는 나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 맞을지 아니면 연락을 하지 말아야 할지 수없이 고민했다고 한다. 그 기나긴 고민 끝에 연락을 했는데 혈육이 아니라니 그들도 의아해했다.
나는 사실 뭐 하자는 건지 화가 났다. 그러나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들도 내가 성이 다른 동생이라고 믿었고 모친이 버린 자식을 보고 싶었다는 말에 그분들의 삶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그 사람들이 내 혈육이 맞을 거라는 생각을 한 내 자신이 후회스럽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아직도 엄마를 찾지 못했다. 신문과 방송에서 엄마 없이도 잘 컸다는 말하며 아직도 엄마를 보고 싶지만 굳이 찾으러 노력하고 싶지는 않다. 또 다시 절망감을 느끼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연락한 그분이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나는 그럴 수 있다면 태연히 말했다. 속마음과는 다르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녀는 마지막의 말이 나에게 너무나 불쾌하게 들렸다. “성남씨 성남씨의 엄마도 자식을 버릴 때 버리는 사연이 있었을 거예요. 부모를 이해하세요.” 맞다. 나는 나를 버린 부모를 이해한다. 몇 십년을 그렇게 의식적으로 체면을 걸었다.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고자 무지 노력했다. 그러나 제3자로부터 부모를 이해하라는 말을 들으니 정말 그 사람을 가만히 두고 싶지 않았다.
끌어오르는 분노와 달리 그들도 자식을 찾지 못한 피해자라는 생각에 그들의 상황을 이해하고자 했다.
부디 이 땅의 모든 실종아이들이 부모를 찾기 바라며 나는 내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참. 나는 대한민국의 교육공무원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사람이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이만한 일로 절대 넘어지지 않는다.
또한, 84살이라고 주장하는 그 가짜 모친이 진짜 모친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나의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살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세 딸의 아빠이다. 엄마를 찾지 못하고 슬퍼하는 것보다, 세 딸을 보며 자랑스러운 아빠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