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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희망:

보육원 아동과 자립 준비 청년들의 원래

순수한 희망보육원 아동과 자립 준비 청년들의 원래 모습을 되찾아주기    

 

 아이들은 늘 밝고, 순수하다. 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즐거움에 몰입하며, 장난감으로 놀거나 각자의 세계에 집중하곤 한다. 이런 천진난만한 모습은 어른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들의 순수함은 그들만이 가진 무기이며, 우리는 그 품성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힘을 얻을 때가 많다.   

  

 엘리베이터에 한 가족과 다른 주민이 함께 타게 되었다. 아이는 주민의 머리를 보고 자기 엄마에게 “엄마 왜 저 아저씨는 머리카락이 없어?”라고 스스럼없이 물어본다. 순간 엘리베이터에는 뜻 모를 정적이 흐르게 되고 분위기는 그야말로 싸해진다. 하지만, 질문을 한 아이에게 어떤 잘못이 있을까. 아이는 정말 궁금하여 제 엄마에게 물어본 것뿐인데 말이다. 해당 주민 역시 기분은 썩 좋지 않지만 그걸 드러낼 수도, 웃어넘길 수도 없는 묘한 상황이 연출된다.      


 부모와 떨어져 사는 아이들도 있다. 부모와 분리되어 사는 아이들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감정적으로 알고 있다. 부모와 함께 성장한 사람이라면 만약 나의 부모가 죽는다면 어떤 감정이겠냐는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해본다면, 상상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낄 것이다. 최근 많은 언론에서 자립 준비 청년들의 사회 부적응을 말하면서 보육원에서 성장하면서부터 갖게 되는 습관이나 심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처럼 천진무구한 순수함은 모든 아이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분리되어 생활하게 된 아이들이 느끼는 외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깊다.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과 트라우마는 그들의 밝음과 순수함을 덮어버리곤 한다.     


나 역시 같은 경험을 겪었다. 보육원에서는 내내 참 어둡게 살았다. 웃음이 별로 없었고, 짜증이 많았다. 보육사와의 관계도 불편하기만 했다. 하지만 보육원의 아이들도 라떼와 지금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보육원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얼마든지 웃으며 살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보육원에서 자라난 아이들에게 "너, 보육원 아이 같지 않아."라며 칭찬아닌 칭찬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보육원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늘 우울해야 한다는 편견이 숨어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항상 우울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그들도 누구보다 밝고 순수할 권리가 있다.     


이제, 제목에서 언급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돌려, 아이들의 원래 모습, 즉 순수함과 천진난만함이 가장 행복한 상태라고 말하고 싶다. 보육원에서 자라난 아이들도 그 원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보육원을 퇴소하고 대학에서 공부하여 졸업한 자립 준비 청년들이 세상의 어려움과 싸우며 성장하는 모습은 다른 청년들과 다를 바 없다.     


자립 준비 청년들이 행복을 꿈꾸며 원래의 행복하고 순수한 모습을 되찾고, 자신의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과 행복을 되찾아주는 것은 그들뿐만 아니라, 결국은 우리 모두에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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