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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pr 03. 2023

[D-273] 악몽의 여파에서 벗어나는 중

93번째 글

어젯밤에 끔찍한 내용의 꿈을 꿨다. 내용을 글로 적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한 꿈이었다. 대체 내 무의식 어느 곳에 그런 끔찍함과 잔인함이 내재되어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내 머릿속 상상력이 거기까지 뻗어나갔다는 것이 두려워질 정도로 악몽 그 자체였다. 무슨 꿈이었는지를 아주 간단히 설명하자면 내가 어린아이를 살해하는 꿈이었다. 그것도 아주 이기적인 이유로, 나보다 훨씬 연약하고 힘 없는 존재를, 그래야 될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도 잔인하게 죽이는 그런 꿈이었다. 


왜 이런 악몽을 꾸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주말에 본 영화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호러 영화는 절대 아니었고 오히려 힐링물에 가까웠지만 중간중간 연출이 공포스러운 부분들이 좀 있었는데, 그 장면들 때문에 나타난 무의식인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며칠 전부터 나를 괴롭히고 있는 편두통 때문에 악몽을 꾸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유를 생각해 보았자 어차피 정답을 알 수도 없다. 애초에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부분은 내가 끔찍한 꿈을 꾸었다는 사실과, 그 꿈 때문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고 정신이 딴 데 가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을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가족들에게 악몽을 꾸었다고 이야기했다. 자세한 내용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꿈이었다고 말이다. 꿈에 대해 털어놓지 않는다면 이 내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을 것 같아서, 계속 내용을 곱씹게 될 것 같아서,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아서, 재빨리 악몽을 꿨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꿈은 반대이기도 하고, 또 원래 사람을 죽이는 꿈은 길몽이라고 한다. 나는 꿈 해몽 같은 걸 전혀 믿지 않지만 그래도 좀 위안이 되었다.


"그냥 개꿈이야. 잊어버려."라던가 "그냥 꿈일 뿐이니까 신경쓰지 마." 같은 말보다는 이런 해석이 더 위안이 되는 것 같다. 그 꿈이 그저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개꿈이라는 것을 알고, 그냥 꿈일 뿐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금방 잊어버릴 수 있거나 신경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계속 꺼림칙한 기분이 들고 마음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렇게 반대로 불길한 꿈의 내용을 긍정적으로 해석해 주는 것이 때로는 더 빨리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다. 일단 기분을 곧바로 좋아지게 해 주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해몽을 해 주면 이 꿈이 뭔가 우스운 것처럼 느껴진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에 내가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더 쉽게 잊어버리고 털어 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사실 아직도 어젯밤의 악몽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하긴 하다. 오랜만에 꾸는 악몽다운 악몽이어서 그런 것 같다. 어서 잊어버리고 하루를 개운하게 시작하고 싶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게는 살아야 할 오늘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 오늘의 시간을 살고 할 일을 하나씩 건드리다 보면 이 악몽도 잊힐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다.



/

2023년 4월 3일,

버스 안에서 엔진과 바퀴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Claudia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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