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Apr 04. 2023

[D-272] 아보카도를 키우기 시작했다

94번째 글

지난 일요일부터 아보카도를 키우고 있다. 키우고 있다기보다는 아직은 키워 보려고 하는 단계에 가깝다. 그냥 씨앗만 물에 담가 놓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주 충동적으로 시작한 일이다. 그냥 일요일 오후에 요리하고 남은 아보카도 씨앗이 크고 반질거리길래 아무 생각 없이 만지작거리다가, 갑자기 '이걸 키워 볼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예전에 아보카도 키우기가 한참 유행이었을 때 본 유튜브 영상들도 생각이 났다. 어디선가 아보카도는 키우기 쉽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나도 아보카도를 키워 보기로 했다. 그렇게 아보카도 씨앗이 물이 담긴 소주잔에 올려놓아진 채로 지금 우리 집 식탁 한쪽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 상태가 된 지 이제 딱 하루하고 14시간 정도가 지났다.


블로그며 유튜브를 찾아보며 시키는 대로 하긴 했는데, 과연 잘 자라긴 할지 의문이 든다. 나는 식물을 키우는 데에는 영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식물을 키우는 것은 요리를 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타고난 감각이 있어야 한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대강 눈대중으로도 소금간을 맞추고 불 조절을 하고 센스 있게 레시피를 변주하곤 한다. 하지만 요리를 못 하는 사람들은 '설탕이 없으니 코코아 파우더를 쓰자' 같은 생각을 한다. 배우고 노력하고 연습하면 요리 실력도 늘기야 하겠지만, 타고난 감각의 영역을 채우기는 어렵다.


식물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잘 키우는 사람들은 어떤 화분에 심고 어떻게 물을 주고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익숙하게 해내곤 한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식물 키우기에 타고난 소질이 없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뭘 해 주어야 하는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잘 정리해서 적어 놓은 글과 영상을 보면서 어설프게 따라해 보는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면 식물을 잘 키우는 것은 소질이 아니라 관심에 달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식물 키우기에 관심이 있는 성격을 타고나야 식물을 잘 키우는 소질을 계발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식물을 잘 못 키우는데, 그 이유는 애초에 식물 키우기에 큰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물에 쏟을 정성이 부족하다. 관심이 있다면 어릴 때부터 식물을 관찰했을 테고, 어떤 상황에서 식물이 잘 자라는지를 터득했을 테고, 이런 경험들이 모여서 '타고난 감각'처럼 보이는 능력을 구성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식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이쪽 소질은 그다지 계발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다른 쪽의 소질을 발전시켰다.


식물을 키워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어릴 때 학교에서 강낭콩 키우기, 부레옥잠 키우기 같은 활동을 해 보았던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아보카도를 잘 키워 낼 수 있을지, 과연 싹이나 틔울 수 있을지 걱정이 되면서도 묘하게 설레는 마음도 있다. 나처럼 서툴고 허둥거리는 주인을 만나게 해서 아보카도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내 아보카도가 어떻게 자랄지 기대된다. 부디 잘 자라야 할 텐데.



/

2023년 4월 4일,

출근길 버스 안에서 창 밖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Kelly Sikkema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273] 악몽의 여파에서 벗어나는 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