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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pr 07. 2023

[D-269] 강인하면서도 유연하게

97번째 글

요즘 유튜브에서 탭 댄스 영상을 찾아보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원래도 뮤지컬, 발레 같은 무대 공연을 좋아하는 편이다 보니 탭 댄스 영상들도 가끔 보긴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찾아본 것은 처음이다. 탭 댄스에 푹 빠졌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고, 그냥 조금 관심이 생긴 정도이다. 요즘 <퍼니 걸(Funny Girl)>이나 <애니씽 고즈(Anything Goes)>처럼 탭 댄스 넘버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고전 뮤지컬들을 좀 듣고 있다 보니 자연스레 탭 댄스에도 관심이 생긴 것 같다.


탭 댄스 영상을 보다 보면 짜릿한 기분이 든다. 탭 댄서들의 현란한 발놀림과, 자유분방하면서도 절도 있는 움직임, 신발이 바닥과 부딪혀서 나는 소리의 리듬 등이 한데 어우러져서 짜릿함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탭 댄스 영상을 보는 이 새로운 취미에는 단점이 하나 있다. 바로 조마조마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탭 댄서들이 1초에 20번쯤 바닥을 두들기는 것이나 발목을 굽혔다가 세우는 동작을 보고 있다 보면 어쩐지 내 발목이 다 시큰거리는 것 같다.


그런데 브로드웨이에서 댄서 겸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자레드 그라임스는 탭 댄서 생활을 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발목 부상을 입은 적이 없다고 한다. 발목을 다친 적이 두 번 있기는 한데, 그건 모두 농구를 하면서 상대방이 자레드의 발목을 밟아서 다친 거라고. 그러니까 본인 실수로 다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거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자레드는 탭 댄스가 발목을 아주 강하게 만들어주면서, 동시에 아주 유연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보통 탭 댄서들이 발목을 계속 다쳐서 부상을 자주 입고 발목이 안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탭 댄스를 통해 튼튼하면서도 탄력 있고 유연한 발목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부상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레드는 설명 도중에 발목 부상으로 경기를 쉬고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르브론 제임스도 언급했다. 만약 르브론 제임스가 탭 댄스를 연습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그는 심지어 '모든 스포츠 선수들이 발목 강화를 위해 탭 댄스를 배워야 한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자레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발목을 튼튼하면서 유연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탭 댄스라면, 나를 튼튼하면서 유연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무엇일까? 라는 생각이. 단순히 두려움과 불안감에 젖어 성벽을 쌓고 단단한 갑옷을 두르고 그 안에 숨어 강한 외피를 가진 척 흉내 내는 것이 아닌, 또 그렇다고 해서 무르고 연약하고 휘어지기만 하는 것도 아닌, 강인하면서도 융통성 있고 회복력 좋은 마음을 가지기 위해 내가 연습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내 인생의 탭 댄스는 무엇일까?


질문은 던졌으나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다. 때로는 강인해지려고 노력하고 때로는 유연해지려고 노력하면서, 조금씩 답을 찾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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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7일,

식탁에 앉아서 TV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Fabian Schneide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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