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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pr 08. 2023

[D-268] 피곤한 날의 글쓰기

98번째 글

피곤하다. 지금 내 상태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눈을 제대로 뜨고 있기도 힘들다. 거의 눈이 감기기 직전이다. 왜 이렇게 피곤한 상태가 됐는지 얘기하자면 길다. 굳이 이 글에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아주 많이 피곤하다는 사실이다. 매일 거르지 않고 97일째 계속해온 글쓰기를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글쓰기 프로젝트는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해서 스스로 계획해서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글쓰기를 할 때 행복하다. 그래서 매일 한 편씩 에세이를 쓰는 것이 딱히 부담이 되거나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씩 귀찮을 때가 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멍이나 때리고 싶은 날이 있다. 오늘처럼 피곤할 때는 더 그렇다. 어차피 매일 에세이를 쓴다고 해서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하루쯤 빼먹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오늘은 하지 말까 싶은 거다.


하지만 이 글쓰기는 나와의 약속이다. 나를 위해서, 나 자신과의 화해를 위해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그래서 나는 귀찮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빼먹고 싶지는 않다. 물론 언제든지 이 프로젝트를 중단할 의향은 있다. 이 글쓰기가 애초 의도와는 다르게 오히려 내 심리 상태에 악영향을 주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면 나는 고민하지 않고 그만둘 것이다. 다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아직까지는 에세이를 쓰는 일이 즐겁다. 또 이 글쓰기 프로젝트가 실제로 내 마음에 도움이 되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오늘의 글쓰기를 빼먹고 싶지 않았다. 피곤한 눈을 조금만 더 오래 뜨고 글을 완성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유튜브로 신나는 노래를 틀었다. 이럴 땐 가사가 있는 노래가 더 낫다. 가사가 없는 노래는 아무리 신나고 경쾌해도 왠지 각성 효과가 덜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가사가 있는 노래는 글쓰기에 약간 방해가 되기도 한다.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글쓰기를 멈추고 노래 가사에 귀를 기울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럴 때 보통 나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된 노래를 듣는다. 프랑스어나 스페인어, 독일어 노래들. 아무리 귀를 기울여 봤자 알아듣지 못해서 노랫말이 아니라 내가 쓰는 글자에 집중할 수 있는 그런 외국어 노래들 말이다. 또 멜로디는 익숙한 것이 좋다. 낯선 멜로디도 내 집중력을 음악으로 잡아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이미 여러 번 들어 본 적이 있는 귀에 익은 노래를 트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리고 노래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선곡을 하는 것은 번거롭기 때문에 앨범을 통째로 틀어 놓는 것이 편하다. 그래서 나는 보통 이럴 때 뮤지컬 앨범을 통째로 틀어 놓고 글을 쓴다. 웬만하면 대사가 들어 있지 않은 것으로. 프랑스 뮤지컬 노래들이나 내가 잘 아는 영미권 뮤지컬의 다른 나라 버전 레코딩 같은 것들이 아주 유용하다.


지금은 뮤지컬 <컴퍼니>의 스페인 초연 버전 앨범을 틀어 놓고 글을 쓰고 있다. 음악이 내 피로를 잠시 잊게 해 주고 내 집중력을 조금 더 길게 유지시켜 주어서 다행히 1막이 끝나기 전에 글을 거의 다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익숙한 멜로디와 낯선 스페인어 가사들이 훌륭한 노동요가 되어 주었다. 내가 잘 모르는 언어의 노래 듣기, 피곤한 날에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는 상황을 해결하는 나만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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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8일,

침대에 기대서 유튜브로 외국어 뮤지컬 노래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blocks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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