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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pr 06. 2023

[D-270] 완벽한 달걀 프라이 만들기

96번째 글

달걀 프라이는 간단하고 쉬운 요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아주 공을 많이 들여야 하는 작업이다. 불 조절도 섬세하게 해야 하고, 프라이팬을 달구는 온도나 시간, 두르는 기름의 양, 달걀을 깨 넣는 타이밍, 뒤집는 타이밍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아주 많다. 나는 반숙 프라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더 어렵다. 자칫 잘못하다간 달걀 노른자가 터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깰 때부터 뒤집을 때까지 신중을 기해야 한다. 한껏 조심스럽게 뒤집개를 움직여야만 완벽한 달걀 프라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오늘 아침에도 달걀 프라이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달걀 두 개와 우유 한 잔, 늘 똑같은 내 아침 메뉴다. 아침에 달걀을 꼭 챙겨 먹다 보니 달걀 프라이 요리에도 익숙해졌다. 그래서 나는 달걀 프라이를 꽤 잘 만드는 편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나는 꽤 자주 완벽한 달걀 프라이를 접시에 담아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오늘의 달걀 프라이는 완벽하지 못했다. 그냥 좀 별로인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망쳐버렸다. 달걀을 깰 때부터 문제였다. 첫 번째 달걀을 깨서 프라이팬에 넣을 때부터 노른자가 터져 버린 거다. 탄식하며 두 번째 달걀을 깨서 넣었는데, 또 곧바로 노른자가 터져 버렸다. 게다가 달걀을 잘 뒤집는 것도 실패해서 모양도 예쁘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망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겨우 완성해서 접시에 옮겨 담고 보니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터진 노른자로 군데군데 범벅이 되어서 프라이라기보다는 익힌 달걀 뭉치에 가까웠다. 반숙이 아니었던 것은 물론이고.


하지만 요리를 망쳤다고 해서 그게 달걀 프라이가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도저히 못 먹을 맛이 되는 것도 아니고, 독성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못생긴 달걀 프라이가 되거나, 조금 덜 익은 달걀 프라이가 되는 거다. 달걀 프라이는 여전히 달걀 프라이다. 아무리 망친다고 해도 결국 달걀 프라이의 스펙트럼에 포함되는 음식이고, 내가 아침으로 먹는 두 개의 달걀 조건을 충족시키는 음식이다.


그러니까 만약 달걀 프라이를 '완벽하게' 해내는 것에 실패했다면, 그냥 조금 덜 완벽한 달걀 프라이를 먹으면 된다. 조금 덜 예쁘고 조금 덜 맛있는 달걀 프라이를 먹어도 괜찮다. 아쉬울 수는 있어도 굳이 더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왜 나는 달걀 프라이 하나도 이렇게 잘 못 할까, 왜 오늘 아침부터 이렇게 운이 안 좋을까, 왜 내 달걀 프라이는 이 모양 이 꼴일까, 이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다. 그냥 접시를 들고 식탁에 앉아서, 여전히 달걀 프라이로 존재하는 눈앞의 음식을 맛있게 즐기면 된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너무 심하게 망쳐서 도저히 이 요리를 달걀 프라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아예 처음부터 휘저어 버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래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어 먹으면 된다. 스크램블 에그도 맛있으니까. 비록 원래 계획했던 달걀 프라이는 아니지만 스크램블 에그를 먹는 것도 아주 즐거운 경험이다. 오늘은 그냥 스크램블 에그를 맛있게 먹고 내일 다시 달걀 프라이를 시도해 보면 된다. 그 이상으로 생각하고 그 이상으로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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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6일,

침대에 엎드려서 유튜브로 노래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Jill Wellington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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