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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pr 18. 2023

[D-258] 10년 전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

108번째 글

"10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인터뷰 기사를 보면 단골로 나오는 질문이다. 나는 영어 기사나 인터뷰를 번역하는 취미를 갖고 있어서, 이 질문과도 자주 마주친다. 지금까지 이 질문에 대한 수많은 답변들을 보았다. "더 여유를 갖고 살아." "다 괜찮아질 거야." "스스로를 믿어." 같은 대답에서부터 복권 당첨 번호를 알려주겠다거나 주식을 사라고 할 거라는 대답까지.


이 다양한 대답들을 보면서 만약 나라면 어떻게 대답할지를 고민했다. 10년 전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과연 무엇인지를. 많은 말들이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건강을 먼저 챙기도록 해." "하루에 30분 이상씩 매일 운동을 해." 이런 현실적인 조언들도 떠올랐고, "너를 증명할 필요는 없어." "넌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너 자신을 속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이런 격려의 말들도 떠올랐다.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 "그 날, 그 말은 절대 하지 마." 같이 후회할 만한 일을 돌이키도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들도 떠올렸다.


하지만 나는 10년 전의 나를 만난다면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을 것이다. 어떤 조언도 해주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내가 미워서가 아니다. 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도 아니다. 나도 가끔 내가 지금 아는 것을 10년 전의 나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아는 것을 10년 전의 나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당연히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실제로 10년 전의 나를 만나서 온갖 조언들을 퍼부어 준다고 해도, 10년 전의 나는 귀담아듣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귀담아듣더라도 아마 가슴으로 느끼고 진심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할 것이다.


깨달음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 같다. 스스로 느끼고 깨우쳐야 진정으로 깨달을 수 있다. 그 깨달음의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리 옆에서 말해줘도 잘 모른다. 다른 누구의 조언으로 지금 내가 아는 것들을 깨우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다른 누구가 나 자신이라고 해도 말이다. 깨달음의 순간은 나 혼자만의 순간으로 찾아온다. 그래서 10년 전의 나에게 지금 내가 아는 것들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가르침을 주려고 해 봤자 별로 소용이 없을 것 같다. 이런 건 나 스스로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경험을 통해서 깨우쳐야만 하기 때문이다.


또 나는 10년 전의 나에게 무엇인가 말을 해서 굳이 과거를 바꾸고 싶지는 않다. 물론 나도 후회하는 일들이 있다. 산더미만큼 있다. 매일 밤 괴로워할 만큼 수없이 많은 후회가 쌓여 있다. 실수도 많이 했고 실패한 경험도 많다. 그때 알았더라면 이렇게 후회하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당연히 든다. 하지만 내가 저지른 모든 실수들과 내가 마주쳐야 했던 모든 장벽들과 내가 겪어야 했던 모든 실패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괴로워하고 울며 보낸 그 많은 밤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가 지금 아는 것들을 10년 전에 미리 알았다면, 지금의 나는 아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을 바꾸고 싶지 않다. 후회 가득한 인생이지만 나는 그냥 이대로 후회하면서 살고 싶다. 비록 눈물 흘리며 걸어온 길일지라도 내가 걸어온 이 길을 그대로 걸어서 지금의 내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10년 전의 나에게 메시지를 전할 기회가 찾아온다고 해도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그렇게 몇 마디 해줬다고 인생이 바뀌지도 않을 거고, 만약 그렇게 된다고 해도 한 마디 말로 과거를 바꾸면 재미가 없으니까 말이다. 지나온 과거를 바꿀 수 없다는 점이 지금 내 앞에 놓인 이 순간을 더욱 소중하고 찬란하게 만들어 준다. 이게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

2023년 4월 18일,

식탁에 앉아서 창 밖 바람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Christopher Goodwi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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