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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pr 19. 2023

[D-257] 10년 후의 나에게 듣고 싶은 말

109번째 글

어제 10년 전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글 보러가기) 이 글에서 나는 10년 전의 나와 만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을 거라고 했다. 지금 내가 아는 것들은 어차피 누가 말해줘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에 일조했기 때문이다. 어제 그런 내용의 글을 썼었다. 그리고 잠들기 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10년 뒤의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인지.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잠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많은 생각이 드는 때다. 가장 머릿속이 활발하게 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어제 이불 속에서 한참 동안 생각을 했다. 과연 내가 10년 후의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나는 10년 후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말이 아니어도 좋으니 그냥 확신을 갖고 싶다. 지금 내가 오르려고 끙끙대고 있는 이 산봉우리가 10년 후에는 저 아래쪽에 보일 거라는 확신, 지금 헤쳐 나가려고 애쓰고 있는 이 파도가 10년 후에는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사소한 것으로 여겨지리라는 확신을. 이런 믿음을 갖게 된다면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다. 


이 생각을 하고 나자 갑자기 내가 조금 우스워졌다. 어제는 10년 전의 나를 만나도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을 거라고 했으면서, 오늘은 10년 후의 나에게 이런 말을 듣고 싶다고 하는 것이 모순적이게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10년 후의 내게서 아무 말도 듣지 않는 것이 바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


10년 후의 나를 만났는데도, 그 10년 후의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 내 삶과 이 세상이 10년 후에는 더 괜찮아지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10년 후의 내가 달려와서 지금의 나를 붙잡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온갖 조언을 퍼부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10년 후의 내가 침묵하는 것을 본다면, 내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 만큼 크게 후회하는 일은 아직 없겠구나, 내가 아직 '더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잃어버리지는 않았구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10년 후의 나로부터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다.


어쩌면 지금 내가 10년 후의 나로부터 아무런 메시지도 받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이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10년 후의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더 나아지리라는, 더 괜찮아지리라는 말을. 이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10년 후의 나는 꽤나 괜찮게 살아가고 있나 보다. 아직 아무 말도 전하지 않은 것을 보니.



/

2023년 4월 19일,

버스에 앉아서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James Coffma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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