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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pr 22. 2023

[D-254] 액션 영화 속 폭력이 주는 짜릿함

112번째 글

존 윅 시리즈의 4번째 영화, <존 윅: 4번째 챕터>를 보고 왔다. 액션으로 시작해서 액션으로 끝나는 시리즈답게, 이번에 나온 4편도 처음부터 끝까지 휘몰아치는 액션과 비주얼로 가득 차 있었다. 전체적으로 자기가 뭘 만들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영화 같다고 느껴졌다. 볼거리도 많았다. 쉼 없이 계속되는 액션 시퀀스, 게임 화면 같은 인상적인 연출, 키아누 리브스와 견자단을 비롯한 배우들의 멋진 액션 연기, 효과적으로 사용된 조명과 배경음악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도 존 윅 시리즈 하면 기대되는 것은 '이번에는 존 윅이 몇 명이나 죽일지'를 보는 것이다. 달려드는 킬러들을 총 한 자루와 방탄 슈트만을 가지고 거의 자연재해처럼 쓸어 버리는 존 윅을 보다 보면 짜릿한 쾌감이 느껴진다. 얻어맞고 다치고 구르면서도 둔탁한 몸짓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존 윅 특유의 액션도 탄성을 자아낸다.


나 역시도 그랬다. 영화 속에서 존 윅이 거의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보면서 쾌감을 느꼈다.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어딘가 시원한 기분도 들었다. 그런데 다 보고 나니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별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킬링타임 영화를 나름대로 재밌게 보고 나왔는데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그 이유를 발견했다. 영화 속에서 비주얼적으로 아름답게 전시된 폭력 때문이었다. 수백 명의 사람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것을 아름답게, 시원하게, 짜릿하게 화면에 담아낸 것 때문에 다 보고 나서 기분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거였다. 그 화면을 내가 아름답게, 시원하게, 짜릿하게 느꼈다는 점 때문에.


왜 우리는 폭력으로부터 짜릿함을 얻을까? 근본적으로 이런 의문이 떠올랐다. 우울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액션 영화를 찾는다. 그리고 영화 속에 전시되는 폭력을 보면서 열광한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왜 그런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영화는 적당한 거리감과 현실감을 유지한 채로,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한다. 그리고 액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영화가 보여주는 폭력과 현실의 폭력은 다르며, 장르의 법칙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폭력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전쟁 영화나 고발 영화와는 다르게 액션 영화는 발레나 무용극처럼 신체의 움직임과 화면 연출을 근사하게 보여주는 장르이다. 그렇게 멋지게 보여주는 것도, 그걸 멋지게 받아들이는 것도 당연하다.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고 해서 폭력에 찬성하거나 옹호하는 것이라고 비약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1초에도 몇 명씩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 만족감과 쾌감을 느끼는 나 자신이 약간 거북하게 느껴진 것은 사실이었다. 어쩌면 영화에서 계속 업보와 인과응보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그렇게 느껴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내가 약간 피곤한 상태에서 영화를 봐서 몰입하지 못해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영화를 보며 짜릿함을 느끼면서도 영화 속 폭력이 지나치게 압도적이라고 느꼈다. 평소에 액션 영화를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내가 느낀 이 모순적인 감정에 대해서 조금 더 고민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민하다 보면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깨닫게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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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2일,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서 이야기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Pascal Meie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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