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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pr 21. 2023

[D-255] 유머의 방향에 대해서

111번째 글

어제 유머의 역할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 (글 보러가기) 유머는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만들어줘서, 슬픔과 괴로움에 무너지지 않고 계속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그 에세이를 마무리하고 나자, 문득 영화 <아네트>에 나오는 이 대사가 생각났다. 극중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등장하는 '헨리'가 쇼 도중에 관객에게 말하는 대사다. "내가 왜 코미디언이 됐냐고? 사람들을 무장 해제시키기 위해서야. 그들을 웃기려고. 내가 아는 한, 코미디는 진실을 말하면서도 살해당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니까." 


영화를 보며 이 대사에 개인적으로 공감이 되었다. 유머는 공격당하지 않으면서 진실을 말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거나 권력을 가진 자들을 비판할 때 유머는 좋은 도구가 된다. 풍자와 해학을 섞어 유머로 만들면 사람들을 '불편하지 않게' 만들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머가 일종의 방패가 되어 주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유머의 효과를 활용하려면, 올바른 방향으로 방패를 들어야 한다. 유머에는 방향이 있다. 유머가 가진 가볍게 만들기나 비하의 효과를 잘 보려면 이 비하의 방향이 나 자신을 향해야 한다. 또는 나보다 '사회적으로' 더 높은 지위와 특권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약자와 소외된 이들을 비하하면, 그것은 유머가 아니라 조롱과 멸시가 된다. 웃음이 아니라 불쾌함만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농담을 던질 때는 그 농담의 방향과 파장을 아주 조심스럽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코미디 대본을 잘 쓰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나 자신을 비하하는 것은 가장 쉽고 편리한 유머의 방법이다. 나를 우습게 만들면서 웃음을 유발하는 것 말이다. 누군가를 웃기려고 말하는 유머가 아니더라도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도 이런 희화화를 사용할 수 있다. 어제 에세이에서 적은 것처럼, 유머는 나와 나를 둘러싼 상황을 가볍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얼마든지 내 머릿속에서 나 자신을 비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사랑이 기반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 없이 이루어지는 비하는 더 이상 유머가 아니게 된다. 오히려 자책이 되고 자기혐오가 되어 버린다. 나 자신을 우습게 만드는 것 자체는 괜찮지만, 너무 많이 비하하면 안 된다. 적당한 선을 지켜야 한다. 그 선을 넘어 버리면 상처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유머는 그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로만 사용해야 한다. 나를 우습게, 가볍게 만들되, 충분히 나 자신을 사랑해 주어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천사들의 제국>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사랑을 검으로, 유머를 방패로.' 책을 읽은 지 오래되었는데도 이 문구는 인상적이었어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이 말처럼, 유머는 나를 지켜 주는 방패로 작용한다. 단순히 다른 사람들에게서 공격받지 않을 수 있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지켜 주는 정신적인 방패 역할을 해 준다. 그러나 한 손에 유머를 들었다면 다른 손에는 꼭 사랑을 쥐고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손 안에 사랑의 검이 없다면, 유머가 더 이상 방패가 아니라 남을 찌르고 나를 찌르는 날카로운 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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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1일,

버스에 앉아서 잡담과 교통 소음이 섞인 잡음을 들으며.



*커버: Image by Jaime Spaniol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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