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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pr 28. 2023

[D-248] 기꺼이 가까이

118번째 글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말이 있다. 찰리 채플린의 명언이라는데, 나는 이 말에 공감하는 편이다. 세상 모든 것은 양면적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더 가까이에서 들여다볼수록, 대상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그 대상의 어두운 부분까지 목격하게 된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보면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들이 내 현실 속에 들어와 버리면 더는 아름답지 않게 보이는 경우가 많다. 멀리서 봤을 때는 조금의 흠도 없는 완벽한 동그라미였는데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삐뚤빼뚤한 선으로 그려진 찌그러진 동그라미인 경우가 많다.


사람을 대할 때 특히 그렇다. 으레 롤 모델을 만나면 안 된다고들 한다. 롤 모델을 만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그 사람에 대한 환상이 깨져 버리게 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롤 모델을 동경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 클수록,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면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사람이 아니라 어떤 추상적인 대상이어도 비슷하다. 뭔가를 너무 잘 알면 보이는 것이 많아서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기가 어려워진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지 말라는 조언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그 일이 내 삶에 직업으로서 자리하게 되면 너무나도 가까워져서 더는 순수하게 좋아하기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좋아하는 것들에 더 다가서고 싶어한다. 동경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고 싶어하고, 관심 분야를 직접 체험해보고 싶어하고, 좋아하는 작품이나 업계의 A부터 Z까지를 전부 파헤치고 싶어하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한다.


나는 이 점이 인간의 용기를 잘 드러내 준다고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가까이하려 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일부를 비극으로 만들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뜻이다. 그만큼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거리감으로부터 오는 편안함을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희극이 비극으로 바뀌어도 괜찮을 정도로,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용감한 일인지. 인간은 기꺼이 가까워지면서 희극을 비극으로 만들 용기가 있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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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28일,

소파에 기대 누워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Ricardo Gomez Angel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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