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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Apr 29. 2023

[D-247]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는 곳

119번째 글

가끔가다 예전의 내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더 어린 시절의 내가 갖고 있던 성격과 특징들을 지금 내가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는 느낌이다. 한때 나였던 것들이 더 이상은 내가 아니라는 느낌. 예전의 나는 이렇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나로 변해버렸다는 느낌.


뮤지컬 <웨이트리스>에 나오는 'She Used To Be Mine'이라는 노래에는 한때는 나였지만 지금은 사라져 버린 나 자신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고, 언제나 나를 울컥하게 만드는 노래다. 이 노래는 잃어버린 예전의 나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잃어버린 내 모습을 떠올릴 때는 언제나 반추와 후회, 한숨, 그리움이 동반된다. 


She's imperfect but she tries
She is good but she lies
She is hard on herself
She is broken and won't ask for help

그녀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노력하고 있어.
그녀는 착하지만 거짓말을 하지.
그녀는 스스로를 모질게 대해.
그녀는 부서졌고, 도움을 청하지 않을 거야.

She is messy but she's kind
She is lonely most of the time
She is all of this mixed up
And baked in a beautiful pie

그녀는 엉망이지만 친절하기도 해.
그녀는 대부분의 시간을 외롭게 보내지. 
그녀는 이 모든 면들이 뒤섞여서
구워진 아름다운 파이 같아.

She is gone but she used to be mine
 
그녀는 이제 사라졌지만 한때 그녀는 내 모습이었어.

- She Used To Be Mine 중에서


물론 예전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다르다는 것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예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잘하는 것들도 있다. 지금의 나는 전보다 더 많이 알고 더 단단해지고 더 여유로워지고 능숙해졌다. 또 전에 비해 훨씬 나아졌다는 생각이 드는 면모들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사람은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라, 내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를테면 무엇이든 더 잘 알고 싶어 하던 호기심 같은 것. 비겁하게 침묵하지 않고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었던 용기. 낯선 것에 거리낌 없이 다가갈 수 있던 자신감과 적응력. 더 많이 분노하고 더 많이 고민할 수 있었던 체력. 어느샌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이런 모습들이 내게서 사라져 버렸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예전의 내 모습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대체 어느 곳을 뒤져야 잃어버린 나를 찾을 수 있을지. 답은 명확하다. 나 자신에게서 찾는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나는 100% 나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잃어버린 것들은 어디 가지 않았다.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지금의 내가 그것들을 어디서 찾아서 어떻게 끄집어내야 할지 그 방법을 잠시 잊은 것뿐이다. 그러니 예전의 내가 그리워지고 서글퍼진다면 끈질기게 나를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이건 무인도에서 보물을 찾는 과정과 비슷하다. 나는 이 작은 섬 어딘가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보물을 묻어 놓은 것도 나다. 그러니 내가 잃어버린 것은 그 보물이 아니라 지도다. 그 보물이 어디에 묻혀 있는지 가리키는 지도를 잃어버렸을 뿐인 거다. 하지만 지도 없이도 나는 이 섬을 계속해서 탐색하고, 예전에 본 지도를 떠올리며 방향을 잡으려 노력하고, 계속해서 삽질을 하며 땅을 파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보물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

2023년 4월 29일,

소파에 기대 누워서 창 밖의 자동차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Inga Gezalian Angel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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