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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05. 2023

[D-241] 멍한 하루를 보냈다

125번째 글

오늘은 묘하게 머릿속이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머릿속이 깨끗해졌다거나 맑아졌다거나 하는 뜻이 아니다. 원래 나는 생각이 많아서 괴로운 편이다. 그래서 부디 머릿속을 잠잠하게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오늘 느낀 이 텅 빈 느낌은 그런 기분 좋은 잠잠함은 아니었다. 비유해 보자면, 평소에는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바다 같았던 머릿속이 오늘은 늪이나 느리게 흐르는 강 하류처럼 뻑뻑해진 기분이다. 그냥 좀 멍하다. 아침에 늦잠도 잤고 푹 쉬고 일어났어서 분명 피곤한 건 아닐 텐데, 멍하다. 그래서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멀뚱멀뚱 허공을 쳐다보며 가만히 앉아있다가 정신을 차리는 일이 반복되는 그런 하루를 보냈다.


지금 내 상태를 좀 고민해 봤다. 왜 이렇게 멍한지를. 나는 지금 좀 지친 것 같다. 지쳐서 뭘 할 기운이 없는 것 같다. 몸을 움직일 기운뿐만 아니라 머릿속을 움직일 기운도 좀 빠져 있지 않나 싶다. 그래서 지금 약간 정체된 상태인 거다. 뻑뻑한 늪 같은 기분이 여기서 오는 것 같았다. 지쳐서 잠깐 멈춰 있어야 하는 상태라 그랬던 거다.


피곤한 것과 지친 것은 다르다. 피곤한 것은 잠을 자고 푹 쉬면 해결된다. 좀 더 순간적으로 닥쳐오는 피로이다. 하지만 지친 것은 이 피곤함에 한참을 시달리고 난 뒤의 상태다. 그래서 잠을 자고 일어나도 이 지친 기분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피곤함이 아픈 눈을 문지르며 졸린 눈이 점점 감겨오는 것을 느끼는 것이라면, 지침은 뜬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게 되는 것이다. 피곤함이 피부를 때리는 파도를 견디는 일이라면 지침은 바닥을 모르는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이 지친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나를 이 늪에서 건져 주어야만 한다. 내가 나에게 손을 내밀어서, 진흙 속에서 내 몸을 뽑아 끌어내야만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리프레시가 필요하다. 휴식도 필요하지만 무언가 다른 일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운동을 하면서 땀을 흘리고 기분 좋게 샤워를 한다거나, 발마사지를 받으러 간다거나, 서점에 가서 책 구경을 한다거나, 영화를 보고 녹차 라떼 한 잔을 사서 돌아온다거나, 그런 일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는 영화를 보러 가려고 예매를 해 두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맛있는 브런치를 먹고, 헬스장에 가서 땀을 좀 빼고, 집으로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개운하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가볍게 족욕을 하려고 한다. 그러고 나면 이 지친 몸과 마음을 해결하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

2023년 5월 5일,

소파에 앉아서 TV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Koes nadi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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