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슬로 May 04. 2023

[D-242] 배고픈 출근길

124번째 글

나는 보통 새벽 6시 정도에 일어나고, 9시 30분 정도에 아침을 먹는다. 기상에서 아침 식사까지 3시간 30분의 공백이 있는 이유는 내가 아침을 회사에서 먹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사원들이 매일 아침을 먹을 수 있도록 간단한 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아침을 챙겨 먹는 대신에 회사에서 아침 식사를 하게 되었다.


처음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이 3시간이 넘는 공백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나는 원래 일어나자마자 아침을 먹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사 시간이 3시간이나 늦춰졌으니, 배가 고프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 생활 초반에는 그냥 집에서 밥을 먹고 출근하기도 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배고픔을 참으며 힘겹게 출근을 하곤 했다. 하지만 점점 이 생활 리듬에 몸이 적응하게 되었고, 이제는 출근해서 아침을 먹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아침에 공복 유산소 운동도 하게 되었고, 아침을 먹지 않은 상태로 출근 준비를 하고 버스에 올라타도 그다지 힘들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이제는 출근하기 전까지는 별로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3시간 30분 동안 공복 상태로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다. 오전 시간에는 아주 쉽게 공복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오늘은 예외다. 도저히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다. 계속해서 배가 꼬르륵거리는 것이 느껴지고 왠지 몸에 힘도 들어가지 않는 기분이다. 배가 너무 고파서 빨리 아침을 먹고 싶다.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아침 10시로 예정되어 있는 피검사를 위해서 어젯밤 12시부터 금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평상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아침이다. 똑같이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버스에 올라 출근을 하고 있는 상황. 어제와 다를 바가 없다. 단 한 가지만 제외하고. 어제는 자발적이었고 오늘은 '강제로' 공복 상태라는 점만이 차이가 있다. 어제는 내가 먹고 싶을 때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회사에 가서 아침을 먹던, 집에서 아침을 먹던, 내가 원하는 시간에 식사를 할 자유가 있었다. 배가 고프면 그냥 내키는 대로 아침에 뭐라도 먹고 출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오늘은 누가 시켜서 하는 금식이다. 아침을 먹는 것을 금지당해서 공복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너무나도 배가 고프다. 이 허기를 참는 것이 괴롭다.


이런 걸 보면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기묘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금지되면 갈망하기 시작한다. 제한되면 꿈꾸기 시작한다. 마치 코로나 시대에 집에만 있었던 경험과 비슷하다. 나는 내가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정말 좋아하는 '집순이' 그 자체라고 생각했다. 나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좋아서 집에 있는 사람이었다. 집 안에 있으면서도 답답함이라던지 따분함이라던지 하는 것들을 느껴 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판데믹을 겪으며 밖에 잘 못 나가게 되자, 기묘하게도 밖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와 똑같은 공간인데도 집이 답답하게 느껴졌고, 전과 똑같이 집에서 보내는 일상인데도 어딘지 따분하게 느껴졌다. 평소에는 전혀 밖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오히려 밖에 있어도 집으로 들어가고 싶은 편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밖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밖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된 것이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내가 원해서 할 수 있는 자유. 그 자유가 이렇게나 중요했다는 것을 출근길 버스 안에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또 한 번 실감하고 있다.



/

2023년 5월 4일,

버스에 앉아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Brooke Lark from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D-243] 나의 영원한 수호천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