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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09. 2023

[D-237] 3시간 47분의 여유

129번째 글

어제 나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분명 일찍 자리에 누웠고 아주 피곤했는데도 잠들기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얕게 잠들었는지 조그만 소리에도 뒤척였고, 새벽에도 몇 번씩이나 잠에서 깼다. 평소에 내가 그다지 숙면을 취하는 편이 아닌 것을 감안해도 어제는 수면의 질이 좋지 못한 편이었다. 아마 오늘 아침 7시에 필라테스 수업을 잡아 놓았어서, 꼭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수업에 나가야 한다는 압박이 좀 있었던 모양이다.


일찍 일어나는 것 자체에 부담감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게 부담이었으면 애초에 아침 7시로 수업을 잡지 않았을 거다. 늦잠을 잘까 봐 걱정이 되었던 것도 아니었다. 원래 나는 아침잠이 없는 편이라 보통 새벽 6시~7시 사이에 일어난다. 잠귀가 밝아서 알람이 울리면 그냥 벌떡 일어나서 정신을 차리는 사람이기도 하고. 하지만 어제 내가 걱정했던 것은 피로였다. 잠을 잘 자지 못해서 피곤한 상태로, 좋지 못한 컨디션으로 운동을 하러 가게 될까 봐 걱정이 됐다. 그래서 숙면을 취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최소한 7시간 이상은 자고 일어나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다. 뒤척이다가 새벽에나 겨우 잠들어 버려서 7시 전에 미처 눈을 뜨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래서 어제 나는 계속 잠에서 깨서 시간을 확인하곤 했다. 마지막으로 깼을 때는 혹시 내가 늦게 일어나진 않았나 싶어서 화들짝 놀라면서 깼다. 아직 해도 뜨기 전이라 방 안이 온통 깜깜했는데도 잠결이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황급히 핸드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은 새벽 3시 13분이었다. 그 시간을 보자 알 수 없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문득 내게 아직 시간이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7시가 되기까지 내게는 3시간 47분의 여유가 있었다. 그 여유가 그토록 달갑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3시간 47분이라는 이 짧다면 짧은 시간이 내게 남아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이 들고 나자 한껏 힘이 들어가 있던 몸의 긴장이 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덕분인지 나는 아침 6시 30분쯤에 눈을 뜨기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잘 잤다. 그래서 어젯밤 전체를 두고 보면 수면의 질이 좋지 않았지만, 마지막 3시간 정도는 정말 깊게 잘 잤다. 처음이 좋지 않아도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인지 나는 어제 전체적으로 잠을 설쳤지만 그다지 피곤하지 않다. 아침 운동도 나쁘지 않은 컨디션으로 잘 했고, 출퇴근할 때도 컨디션이 괜찮았다. 밤이 된 지금도 적당히 피로한 정도이다. 모두 이 3시간 47분의 여유 덕분이다. 아주 약간의 시간적 여유라도, 그 여유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안도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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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9일,

소파에 엎드려서 스포츠 중계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Amanda Jones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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