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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11. 2023

[D-235] 용 그림에 눈동자 찍기

131번째 글

오늘 길을 걷다가 벽화를 하나 보았다.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는 용이 그려져 있는 벽화였다. 그 그림을 보자 자연스레 화룡점정(畵龍點睛) 고사가 떠올랐다. 대강 설명하자면 이런 이야기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화가 장승요는 뛰어난 그림 실력을 가진 화백이었다. 절에 벽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장승요는 네 마리의 용을 벽에 그려 넣었다. 그러나 네 마리 모두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은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의아하게 여기자, 장승요는 눈동자를 그린다면 용들이 승천해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장승요의 말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그에게 눈동자도 그려 넣으라고 재촉하자, 그는 붓으로 점을 찍어 용의 눈에 눈동자를 그렸다. 그러자 곧바로 용이 벽을 박차고 나와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이 고사를 떠올리며 나는 눈동자 없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 버린 나머지 세 마리의 용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눈동자를 얻지 못해 용이 될 기회를 놓치고 벽에 그림으로 남은 세 용들에 대해서. 장승요는 그림을 완성시켜서 살아 있는 용을 창조해 낼 능력이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야만 그림이 그림으로 남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승요는 그렇게 미완의 그림을 창조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그는 용을 창조해 낼 기회를 놓친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장승요는 눈동자를 그리는 일이 두려웠을지도 모른다. 눈동자를 잘 찍어서 용이 되어 날아가 버리는 것도 두려웠을 수 있지만, 눈동자를 잘못 찍어서 용도 승천을 못 시키고 그림도 망쳐 버리는 상황이 두려웠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열심히 노력해서 그린 그림을 마지막 단 한 번의 붓터치로 망칠 수도 있는 리스크가 두려웠던 것일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눈동자를 아예 찍지 않는 쪽이 나을 수도 있다. 그림은 미완성된 채로 남겠지만, 적어도 그림을 망쳐버리지는 않았으니까.


나는 이 두려움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겁이 많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결정적인 일을 해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시작한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기는 쉽지 않다. 도중에 타협하는 것은 쉽지만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안전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시도하는 일에는 위험이 뒤따른다. 성공할지 못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행동하는 것은 리스크가 따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벽에 눈동자 없는 미완의 용 그림을 남기기보다는 네 마리의 살아 있는 용과 빈 벽을 남기고 싶다. 아니면 네 개의 잘못 그려진 용 그림을 남기고 싶다. 적어도 그 그림은 완성되기는 했으니까 말이다. 눈동자가 잘못된 위치에 이상하게 찍혀서 그림을 망쳐버리는 결과를 얻게 된다 하더라도, 그 점을 한번 찍어 보고 싶다. 시도해 보고 싶다.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인 것 같다. 내게 붓을 들 용기만 있다면, 나는 용의 눈동자를 그려 넣고 싶다. 눈동자를 그려 넣을 용기와 책임감을 갖추고 싶다. 언젠가 이런 고민에 빠지게 되는 시기가 오면, 부디 내가 용감하게 그 그림에 눈동자를 찍어 넣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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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1일,

버스에 앉아서 라디오 방송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順平 黃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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