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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22. 2023

[D-224] 얼룩이 묻은 옷을 입고

142번째 글

오늘 입고 나온 셔츠에 얼룩이 묻은 걸 발견했다. 엄지손톱 정도 크기의 얼룩이 셔츠 밑단 부분에 남아 있다.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다. 다행히 색깔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약간 물 자국 같은 얼룩이다. 하지만 진짜로 물 자국은 아니다. 물이 묻은 거였다면 금방 말랐을 텐데 아직까지도 이 얼룩은 그대로니까. 분명 아침에 꺼내 입을 때까지만 해도 발견하지 못했던 얼룩이었는데, 한 번 눈에 띄자 너무나도 거슬린다. 왜 옷에 이런 얼룩이 묻었는지 잘 모르겠다. 이 옷에 뭘 흘린 기억도 없으니 빨래가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어쨌거나 이제 와서 왜 얼룩이 생겼는지 고민하는 일은 의미 없다. 내가 얼룩진 옷을 입고 출근을 하고 있다는 이 상황이 중요할 뿐.


처음 옷이 얼룩진 것을 발견하자 너무 신경이 쓰였다. 얼룩이 묻은 셔츠 밑단을 계속해서 의식하게 되었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이라, 그리고 내 평판에 아주 많이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 더 신경이 쓰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제대로 세탁이 되지 않은 얼룩진 옷을 입고 다니는 지저분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또는 옷에 얼룩이 묻은 것도 모르는 무신경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더 걱정되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얼룩이 묻은 옷을 입고 나왔고, 돌아가기에는 너무 먼 길을 와 버렸다. 이런 걱정을 해 봤자 의미가 없다. 출근길에 옷을 사 입을 수는 있겠지만 굳이 그런 데에 시간을 쓰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오늘은 그냥 얼룩 묻은 옷을 입고 출근한 사람으로 하루를 보내면 된다. 별로 큰 문제도 아니고, 이상한 것도 아니니까. 그리고 생각보다 사람들은 내게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 옷에 얼룩이 묻었는지 아닌지 집중해서 들여다보지 않는다. 옷을 입은 나도 뒤늦게 눈치챘는데, 다른 사람들이 얼룩을 눈치채는 일은 아마 더 어려울 것이다. 그냥 나만 공연히 걱정을 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누군가 이 얼룩을 눈치챈다고 하더라도, 보통은 그냥 '옷에 얼룩이 묻었네.'라고 생각하지, '저 사람은 왜 저런 얼룩 묻은 옷을 입고 다녀? 지저분한 사람이네.'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까. 만약 후자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나쁜 거다. 옷에 묻은 얼룩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이상한 거지, 얼룩진 옷을 입고 있는 게 이상한 게 아니다. 자기합리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건 그냥 사소한 얼룩 하나,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작은 얼룩 하나일 뿐이다. 이 얼룩 때문에 내 하루를 망칠 수는 없다.


오늘 나는 얼룩이 묻은 옷을 입고 아주 괜찮은 하루를 보낼 작정이다. 



/

2023년 5월 22일,

버스에 앉아서 출근길 소음을 들으.



*커버: Image by Kseniya Laptev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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