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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23. 2023

[D-223] 번역은 나의 취미

143번째 글

어제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한 가지 했다. 바로 번역이다. 나는 번역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면 가끔씩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영어 기사나 좋아하는 작품과 관련된 인터뷰, 팟캐스트 등을 한국어로 번역하곤 한다. 돈을 받고 하는 것도 아니고 번역을 해서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도 아니다. 가끔 블로그에 업로드할 때도 있지만 그뿐이다. 나는 그냥 번역이라는 이 작업 자체가 즐겁다.


번역이 즐거운 이유는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긴다는 그 본질적인 특징 때문이다. 영어로 말한 화자의 말, 영어로 적힌 필자의 말을 한국어로 바꾸면서 원어의 뉘앙스를 어떻게 한국어로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다. 또 번역을 하다 보면 아주 빠져들어서 몰입하게 되는데, 그렇게 집중력을 발휘해서 무언가를 해내는 그 기분이 정말 좋다.


이런 몰두는 창작을 할 때 느껴지는 몰입감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다. 내 글을 쓰는 일은 오로지 내 머릿속에만 집중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번역은 이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의 머릿속에 집중하게 된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의도로 이 말을 했는지, 또 말투와 태도는 어떤지, 그런 것들을 파악하는 데에 몰두하게 된다. 그래서 번역은 다른 사람의 머릿속을 파고들어서 그 사람을 이해하고 대변하는 창조적인 작업이라고 느껴진다. 이 부분이 정말 재미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번역은 일종의 대화가 아닌가 싶다. 대화를 할 때 우리는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때 상대방이 말한 내용은 그대로 텍스트 파일로 머릿속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내 머릿속에서 쓰는 고유의 언어로 바뀌어서 저장된다. 그래서 같은 의미도 다르게 받아들이고 같은 상황도 다르게 기억되는 거다. 마치 번역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번역은 그 글을 쓴 사람, 그 말을 하는 사람과 일방향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다.


이렇게 번역 작업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지만 나는 전문 번역가가 아니고 번역과는 전혀 무관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내게 번역은 그저 순수한 취미 생활이다. 그 점도 좋다. 내가 직업으로 택한 일이 아니라서 그렇게까지 공들이지 않고 적당히 골치 아프고 적당히 창의적으로 머리를 쓸 수 있는 일이라는 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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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3일,

버스에 앉아서 무엇인지 모를 끽끽거리는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Laura Ohlma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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