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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24. 2023

[D-222] 물 마시는 것을 잊을 정도로

144번째 글

물을 더 많이 마셔야겠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다. 갑자기 이 생각을 하고 있는 이유는 오늘의 경험 때문이다. 오늘 아침 나는 출근 직후 평소처럼 정수기에 가서 물컵에 물을 가득 받아 두었다. 나는 물을 많이 마시는 편이라, 이렇게 물을 떠 놓고 하루 종일 조금씩 마시면서 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근 전까지 몇 번씩이나 정수기를 왔다 갔다 하며 빈 물컵을 다시 채우는 것이 일상이다. 분명 예전의 나는 그랬다.


그런데 오늘은 퇴근할 때까지 물컵이 한 번도 비지 않았다. 비기는커녕 거의 내내 가득 차 있었다. 오늘 내가 물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중간에 커피를 한 잔 마시기는 했다. 하지만 그 커피 한 잔과 물 두세 모금을 제외하면 액체를 아예 섭취하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짐작이 간다. 물 마실 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바빠서, 너무 집중해서 일하느라 물 마시는 것도 잊고 있었던 거다.


퇴근할 때 물컵에 가득 찬 물을 싱크대에 따라 버리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요즘 물을 잘 안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커피는 마셔도 물은 잘 안 마시고 있었다. 지난 며칠간 아주 피곤했는데, 어쩌면 내가 탈수 상태여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야근에 주말 근무까지 하고 있는데 물도 잘 마시지 않으니 더더욱 피곤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피곤하니까 잠을 깨려고 커피를 마시는데, 커피는 이뇨 작용을 해서 탈수를 촉진하는 역할을 했을 테니 악순환이었던 셈이다.


물 마시는 것도 잊을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는 말은 절대 칭찬이 아니다. 오히려 아주 슬픈 일이다. 그만큼 내가 나를 학대하고 있었다는 뜻이니까. 그래서 오늘 나는 결심했다. 물을 더 많이 마시고 더 자주 마셔야겠다고. 물 마시는 것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겠다고. 나 자신에게 더는 가혹하게 굴지 않겠다고 말이다.



/

2023년 5월 24일,

버스에 앉아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Chinh Le Duc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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