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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May 27. 2023

[D-219] 따뜻한 것이 좋다

147번째 글

나는 뜨거운 거라면 사족을 못 쓴다. 한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물을 마실 때도 온수를 따라 마시고, 국물 요리도 좋아한다. 펄펄 끓는 국물을 떠 마시면 단전에서부터 '크아아아아'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따뜻한 차나 코코아를 마실 때도 그렇다. 또 나는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것도 좋아하고, 욕조에서 따뜻한 물로 목욕을 즐기거나 반신욕, 족욕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건조기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한 빨래를 끌어안고 있는 것도 정말 좋아한다.


내가 이렇게 따뜻한 걸 좋아하게 된 데에는 별다른 이유는 없다. 그냥 어릴 때부터 따뜻한 게 좋았다. 굳이 추측해 보자면 내가 추위를 많이 타고 더위를 잘 안 타는 체질이라 본능적으로 뜨거운 것에 끌린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정도이다. 나는 한여름에도 극세사 이불을 덮고, 긴 바지를 입고, 에어컨도 거의 안 틀고 생활하는 사람이라서, 그래서 따뜻한 것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거다. 또 추위를 많이 타다 보니 뜨거운 걸 선호하게 된 거고. 그런데 또 내 주변을 보면 더위를 정말 안 타는데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찾는 사람, 추위를 정말 많이 타지만 국물 요리를 안 좋아하는 사람 등등 아주 각양각색의 온도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서 이것만으로는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는 것 같긴 하다.


왜 내가 따뜻한 걸 좋아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왜 따뜻한 걸 좋아하는지 분석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 없는 일인 것 같다. 예전에 내가 한여름에도 뜨거운 커피를 마신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어떤 사람이 '혹시 애정결핍 있어요? 온기가 그리운가 봐.'라고 농담을 던진 적이 있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조금 불쾌했다. 물론 농담으로 던진 말이고 그 사람도 악의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냥 듣고 넘기면 되는 말이었고, 실제로도 그냥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굳이 심리적인 이유를 마음대로 추측해서 연결 짓고 그걸 농담으로 쓰는 것이 무례하다고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정말로 애정결핍이 있어서 뜨거운 것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 온기를 그리워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마음의 추위를 덥히려는 노력일 수도 있다. 얼마든지 이런 식으로 설명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건 다 확대 해석이라고 느껴진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뜨거운 것들에 끌리는 이유는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정말로 이유 없이 뜨거운 것을 좋아하는 성향을 갖고 있을 뿐이다. 시원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뜨거운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거다. 왜 그걸 좋아하게 되었는지 이유를 굳이 찾아낼 필요는 없다. 뭔가 고쳐야 하는 습관이라면 이유를 찾는 것이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 단순한 성향이라면 정말로 '그냥'이 이유일 수도 있다. 여기서 그럴듯한 이유를 찾으려 시도하는 것이 오히려 의미 없는 일일 수도 있고. 나는 그냥, 이유 없이, 원래부터, 따뜻한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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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7일,

식탁에 앉아서 TV에서 흘러나오는 영화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Anne Nygård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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