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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10. 2023

[D-205] 나에 대한 이야기

161번째 글

나는 언제나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를테면 친구와 대화를 나눌 때, 나는 내가 오늘 겪은 개인적인 사건과 그로 인한 감정 상태를 밝히기보다는 내가 요즘 듣고 있는 노래나 어디선가 들은 재미있는 사실을 이야기 소재로 꺼내곤 했다. 화술이 뛰어나다거나 넉살이 좋은 건 전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대화를 재미있게 이끌어 갈 수는 있었는데 그 대화의 주제가 나 자신인 경우는 거의 없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이야기를 쓰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만들어낸 가상의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소설 같은 것. 또는 내가 본 영화나 책의 감상을 적는 것. 또는 어떤 작품을 보고 분석해서 정리해 두는 글. 나는 소설이나 리뷰, 칼럼 등은 즐겨 썼지만 수필은 잘 쓰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피한 건 아니었지만 애초에 수필을 쓸 생각 자체를 그다지 해본 적이 없다고나 할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보통 어떤 대상에 대한 내 감상을 적어 두고 싶을 때나,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서 들려주고 싶을 때였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글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는 일기조차도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내가 쓰는 글은 거의 98%가 수필이다. 올해 1월 1일부터 매일 한 편씩 짧은 에세이를 쓰는 챌린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제는 나 자신으로 한정해서. 내가 아닌 다른 대상에 대해 쓰더라도 그것에 대해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을 위주로 글을 적고 있다. 그렇게 한 지 벌써 161일째가 되었다. 


처음에는 나에 대해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그리고 불안했다. 글을 통해서 나를 드러내 밝힌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나는 폐쇄적인 사람이고 상처를 잘 받는 사람이고 방어적인 사람이라, 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위험 신호에 불이 들어와서 깜빡이는 걸 무시하면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익숙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두렵고 거북하고 걱정이 되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낯설고 불안하지는 않다. 161일이 지나는 동안 적응이 좀 된 모양이다. 조금 익숙해져서 위험 신호에 둔감해진 것 같다. 아니면 위험 신호 자체가 조금 덜 환하게, 조금 덜 자주 켜지거나. 아직도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묘한 기분을 주긴 하지만 그래도 이젠 조금 '괜찮아졌다.' 그래서 지금은 예전보다는 더 자연스럽게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기 전 빈 화면을 앞에 두고 심호흡을 하거나 큰 결심을 하거나 용기를 내거나 굳게 마음을 먹지 않고도 내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앞으로는 더 익숙하고 더 편하게 내 이야기를 글로, 또 말로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한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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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0일,

침대에 앉아서 유튜브로 음악을 들으.



*커버: Image by Everaldo Coelho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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