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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11. 2023

[D-204] 편안한 것만 찾게 된다

162번째 글

나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을 좋아하는데, 주기적으로 꽂히는 장르가 다르다. 기타 사운드가 두드러지는 강렬한 록 음악이 듣고 싶어서 한참 록 음악에 심취해 있다가도 갑자기 오페라 아리아가 듣고 싶어 진다. 그래서 오페라에 빠져 한참을 듣다 보면 또 이번엔 여성 디바들의 파워풀한 보컬이 끌린다. 그래서 여러 장르와 여러 가수를 왔다 갔다 하면서 음악을 즐기곤 한다.


최근에는 카펜터스(Carpenters)의 노래에 꽂혔다. 카펜터스의 노래를 듣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다. 캐런 카펜터의 부드럽고 청량한 목소리, 서정적이고 듣기 편한 멜로디와 리듬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느낌이다. 그래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카펜터스의 노래를 들으면 힐링이 된다. 흥분은 가라앉고 불안과 걱정이 잊히고 턱까지 찼던 호흡이 느려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이런 힐링이 필요해서 오랜만에 카펜터스의 노래를 다시 찾아 듣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무겁고 비장하고 처절한 노래들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애절하게 비명을 지르는 듯한 노래나, 절박한 마음으로 외치는 듯한 노래, 온 마음을 다 쏟아내는 듯한 노래를 말이다. 그런 격정적인 노래를 들으며 널뛰는 감정을 느끼는 걸 좋아했었다. 그런데 이제 나도 나이가 든 걸까? 갈수록 이런 노래들보다는 편안하고 가볍게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물론 내 음악 취향에는 주기가 있어서 갑자기 처절한 노래를 찾아 들을 때도 많지만, 쉽게 들을 수 있는 편안한 노래를 찾아 듣는 빈도가 더 늘었다.


책이나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예전엔 장르 소설이나 킬링타임용 영화를 선호하지 않았었다. 무겁고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과 영화들을 좋아했고, 그런 책과 영화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 쉽게 술술 넘어가는 책들도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 것들은 예상 가능하고 내게 감정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갈수록 편안한 것만 찾게 되는 이유는 아마 살면서 인생이 편안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서가 아닐까 싶다. 이미 인생의 무게가 충분히 무거워서, 내가 즐겁기 위해서 보고 듣는 것들까지 무겁기를 원하지 않는 게 아닐지. 그래서 갈수록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 편하게 볼 수 있는 것, 감정 소모가 그다지 크지 않은 것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지금보다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기면 아마 예전처럼 무거운 작품들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주기적으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찾는 것처럼 말이다. 그전까지는 편안한 것들을 잠시 즐기려 한다. 



/

2023년 6월 11일,

침대에 앉아서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Cory Bjork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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