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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09. 2023

[D-206] 본의 아니게 행복해지도록 만들어주겠어

160번째 글

어떤 문장은 한번 들으면 뇌리에 박혀서 계속 기억에 남는다.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듯 나온 말이어도, 별로 중요한 부분이 아니더라도, 그냥 그렇게 인상 깊게 머릿속에 남아서 오랫동안 기억되는 문장들이 있다. 얼마 전에도 그런 문장을 하나 만났다.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연극 <파랑새>에 나오는 대사였다. 극 중에서 틸틸과 미틸은 파랑새를 찾으러 '행복의 궁전'으로 간다. 그곳에서 만난 사치, 소유, 욕심 등은 틸틸과 미틸에게 함께 이곳에서 지내자고 유혹하며 이렇게 말한다.


"본의 아니게 행복해지도록 만들어주겠어."


연극을 본 지난주 토요일부터 이 대사가 뇌리에 콕 박혀서 잊히지를 않는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다. "본의 아니게 행복해지도록 만들어주겠어." 연극 전체를 보면 그렇게까지 중요한 부분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장은 내게 정말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개인적으로 연극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사이다.


하지만 처음 이 대사를 들었을 때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본의 아니게 행복해지게 만들어주겠다는 이 말이 너무나도 매혹적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사치, 소유, 욕심 같은 존재들이 말하는 대사이니 분명 부정적인 의미일 텐데,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건 너무 좋은 말처럼 들렸다. 부정적인 의미로 보기에는 너무 괜찮아 보였다. 행복은 사실 깨닫지 못했을 뿐 늘 곁에 있었다는 이 작품의 주제를 고려해도 이 대사가 부정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 순간 이미 내 주변에 있는 행복이라는 게.


그래서 지난 일주일간, 계속 머릿속을 맴돌던 이 대사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본의 아니게 행복해진다는 것은 내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텅 빈 행복에서 허우적거리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것을 말이다. 본의 아니게 행복해지게 되면 스스로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히 행복해질 수가 없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행복해져 버린 사람은 끊임없이 더 많은 행복을 얻으려고 애를 쓰게 된다. 그리고 더 행복해지려는 이 노력이 바로 행복을 막는 장애물이다.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은 현재의 상태를 '충분히 행복하지 못하다'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은 불행하다. 행복을 찾아 헤매는 사람은 불행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기를 쓰고 노력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본의 아니게 행복해진 사람은 불행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나를 불행하게 만들어 버린다면, 대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말장난처럼 들리지만, 행복해짐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는 것 같다. 틸틸과 미틸처럼 집 안에서 파랑새를 발견하면 된다. 행복은 어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주변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된다. 행복해지면 된다. 행복해지면 영원히 행복할 수가 있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노력은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행복하다는 것을 느끼기 위한 노력'이 아닐까 싶다.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아주 사소한 기쁨들을 행복이라고 인식한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 별것도 아닌 즐거움들을 소중히 여긴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에게 작디작은 행복들을 선물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 내가 대체로 불행할지라도 아주 약간은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현실에 안주하고 무기력과 패배주의에 빠지고 문제를 덮어두고 모른 척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 너무 많이 노력함으로써 정작 내가 느낄 수 있는 행복마저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는 뜻이다.


결국 우리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것은 갑작스럽게 우리를 덮치는 거대한 행복이 아니다. 아주 작은 행복들이 가져다주는 행복을 느끼는 것이 우리의 오늘과 내일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이미 행복을 찾은 사람만이 더 행복해지고 영원히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미 파랑새를 찾은 사람만이 파랑새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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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9일,

소파에 앉아서  TV에서 나오는 다큐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John Duncan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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