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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14. 2023

[D-201] 감정의 증상

165번째 글

감기에는 약이 없다고 한다. 감기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어떤 바이러스에 맞춰서 치료제를 개발해야 할지 파악하기 어렵고, 철마다 다른 바이러스와 변이종이 유행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 '감기약'은 감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감기의 증상을 완화시켜 주는 약이다. 감기 때문에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고, 콧물이 나면 콧물약을 먹고, 기침이 나면 기침약을 먹는 식으로. 감기는 길어도 몇 주면 낫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증상을 하나씩 치료하는 것만으로도 괜찮아질 수 있는 것이다.


마치 감기처럼, 감정에 휘둘리는 데에도 약이 없는 것 같다. 어제 나는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글 보러가기) 감정에 휘둘리는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며,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에 감정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고 말이다. 감정을 느끼지 않는 법, 갑작스레 몰아닥치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법을 한순간에 깨닫는 것은 쉽지 않다. 이미 느끼고 있는 감정에서 한순간에 벗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로 쉽지 않다.


감정의 치료제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감정의 증상을 완화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감정에 휩쓸려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다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마음을 가라앉혀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갑작스러운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면 위로가 되는 글귀를 읽고 곱씹으며 불안을 줄여 볼 수 있다. 울적한 기분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져 있다면 단순하고 반복적인 리듬을 갖춘 약간 밝은 분위기의 노래를 배경음악처럼 틀어 두고 일하면 조금 나아진다. 스스로 감정에 휘둘리고 있다고 인식하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해 보면 조금 덜 휘둘릴 수 있다.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들이다. 


또, 감기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는 없지만, 감기의 특징을 알면 예방해 보려고 노력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감기는 직접적으로 환자와 접촉하는 것보다는 주변 사물에 묻어 있는 바이러스 입자가 손을 통해서 코, 입 등으로 들어와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손을 잘 씻으면 감기를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다. 또, 감기는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평소에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면 감기 예방에 도움이 된다. 면역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잠을 잘 자고, 밥을 잘 먹고, 건강하게 생활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등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면 감기에 더 잘 대항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감정에 휩쓸리는 것 자체를 막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감정의 증상은 예방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분이 태도로 전환되는 이 중간 연결고리를 약하게 만들어서, 감정으로 인해 일상에 영향이 가는 것을 예방하는 방법이다. 예방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이 아닐까 싶다. 내가 지금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 피곤해서 감정에 휩쓸리기 쉬운 상태라는 것,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해 감정적이기 쉬운 시기라는 것 등, 나와 나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서 잘 인식하고 있으면 미리 대비하고 조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 대해 더 잘 아는 것, 무엇이 나를 감정적으로 만들며 어떤 상황이 감정적인 태도를 촉발시키는지를 잘 아는 것이 감정의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기 위한 예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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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4일,

버스에 앉아 딸깍거리는 소음을 들으.



*커버: Image by Kelly Sikkema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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