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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Jun 13. 2023

[D-202]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

164번째 글

감정에 휘둘리기란 얼마나 쉬운지. 감정으로 인해 남에게 상처를 주는 건 얼마나 쉬운 일인지.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치기란 또 얼마나 쉬운지.


아침부터 감정에 휘둘리기 쉽다는 사람의 특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내 감정이 몇 분 단위로 오르락내리락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은 유독 날이 덥고 습했다. 그래서 아침에 침대에서 약간 땀에 젖은 채로 눈을 떴다. 후덥지근한 공기가 몸을 누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일어나자마자 기분이 확 나빠졌다. 하지만 곧장 샤워를 하러 가서 시원한 물줄기를 몸에 끼얹었더니 또 바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 기분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밤에 땀을 흘리면서 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실수로 화장실 문턱을 걷어차서 또 기분이 바닥을 쳤다. 아픈 발가락을 움켜쥐고 타일 바닥에 앉아 있는데 아무한테나 욕이라도 한 마디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우 1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정말 다양한 감정들이 내 안을 채웠다가 사라졌다.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전혀 아닌데, 감정에 휘둘리게 되는 게 싫다. 기분이 나쁘면 그냥 나쁜 상태로 평범하게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안타깝게도 기분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고야 만다. 기분이 나쁘면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진다. 기분이 좋은 것도 마찬가지다. 기분이 좋은 상태로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도 있지만, 너무 들뜬 탓에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를 하거나 쉽게 흥분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감정에 휩쓸리는 것의 가장 큰 문제는 통제가 잘 안 된다는 점이다. 피곤해서 집중력이 떨어져 있다면 한숨 자고 일어나면 된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으면 되고, 기한까지 시간이 너무 촉박하면 업무량이나 일정을 조정하면 된다. 이런 것들은 통제할 수가 있고, 마음만 먹으면 요령껏 조절해 볼 수가 있다. 하지만 감정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감정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쉽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신나는 노래를 틀고 지칠 때까지 운동을 해 봤자 울적한 기분이 사라지지 않을 때가 있고, 잔뜩 날이 선 마음을 아무리 가라앉히려고 노력해 봐도 잘 안 될 때가 있다.


최악은 내 감정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이다.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괜한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경우, 다른 일 때문에 예민해져 있어서 그럴 일이 아닌데도 날카롭게 반응하는 경우. 이런 경험을 많이 해 봤다. 어떻게 하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는 언니의 핸드폰 배경화면에는 몇 년째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라는 글이 적혀 있다. 어떻게 하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휩쓸린 감정에서 벗어나서 통제를 되찾을 수 있을까. 감정을 충분히 잘 느끼면서도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법을 알고 싶다.



/

2023년 6월 13일,

식탁에 앉아 물 끓는 소리를 들으.



*커버: Image by Raychel Sanner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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